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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5일 서울 강남 보건소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메르스 관련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
'메르스 대응' 최일선 보건소…"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서울 강남보건소, 24시간 비상대기 근무 직원들 '피로 누적'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피로가 누적된 직원들을 좀 쉬게 하고 싶지만, 지금같이 시급한 위기상황에서는 전 직원을 비상대기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10일 서울 강남구 보건소를 찾은 기자에게 서명옥 강남보건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피로로 지친 직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그의 윗입술 왼쪽은 하얗게 터져 있었다.
강남보건소는 서울삼성병원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직후 지난달 31일부터 메르스 상황실을 만들고 메르스 의심 환자를 위한 별도 진료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이날까지 꼬박 열하루째. 의사 7명, 간호사 20여명, 보건·행정직 직원 등 소장을 비롯한 110명 직원 모두가 24시간 비상체제로 근무하고 있다.
메르스 대응 전담과인 보건과는 매일 자정까지, 관련 없는 부서도 오후 10시까지 보건소에서 근무한다. 퇴근 후에도 전 직원이 비상 전화대기를 해야 한다.
서 소장은 "국가적인 비상상황에서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은 공무원의 당연한 책무"라면서 "힘들지만, 우리 직원들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뛰고 있으니 국민들은 보건당국을 믿고 따라달라"고 당부했다.
보건소로 들어서면서부터 이곳이 메르스와 전쟁을 벌이는 '전쟁터'라는 것이 느껴졌다.
정문을 지나 건물로 올라오면 오른쪽으로는 '발열 상담자 전용 출입구', 왼쪽은 '일반진료·민원 전용 출입구'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입구부터 메르스 의심 환자와 일반인을 철저히 분리하는 모습이었다.
발열 상담자 전용 출입구를 지나면 마스크와 흰 가운을 착용한 의사·간호사·임상병리사로 이뤄진 상담팀이 방문객을 맞았다.
이들은 '메르스에 걸렸는지 걱정된다'는 방문객에겐 우선 체온계로 고열이 있는지 체크하고 호흡기 증상, 폐렴, 중동지역 방문 여부 등 메르스 관련 문답을 통해 방문객이 위험군인지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이날 오전에도 방문객 중 4명이 발열 등으로 메르스 감염이 우려돼 이들의 검체를 채취해 질병관리본부로 보냈다.
직원들은 방호 가운·마스크를 착용하고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감염에 대해 우려는 하지 않았지만, 비상근무로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3층에 마련된 '메르스 강남구 방역대책본부'에서는 전화 상담과 자가격리자에 대한 1대 1 모니터링이 한창이었다.
본부 실무추진반장을 맡고 있는 정혜숙(56·여) 보건행정과 팀장은 "메르스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다른 곳이 조금만 아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 수십 분씩 상담을 받은 뒤에야 안심하고 끊는 경우가 많다"며 "어제도 330건의 상담을 소화했다"고 말했다.
자가격리자들이 '나는 아무 증상이 없는데 출근도 못하고 출장도 못간다'고 항의하는 때도 잦다고 한다. 이런 항의와 민원을 받아내는 것도 이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정 팀장은 "우리 과에 임신 3∼4개월인 여직원이 3명이나 되지만 일손이 달려 다른 직원과 똑같이 근무하고 있다"며 "너무 힘들면 알아서 쉬면서 일하라고 했지만 밀려드는 업무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메르스 관련 실무팀인 보건과는 밀려드는 자료 요청과 보고 요청에 눈코 뜰 새가 없어 보였다.
보건과 장순석 전염병관리팀장은 "24시간 체제로 근무하다 보니 정말 직원들이 많이 지쳐있다"며 "다른 부서 직원들도 물심양면 돕고 있지만, 우리가 실무 부서이다 보니 전문성이 필요한 최종 판단과 조치는 모두 우리 몫이어서 업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장 팀장은 "일이 많아 밥 먹을 시간도 없다"며 "지난주 체온이 37도 가깝게 오르는 등 몸살기가 있었지만, 쏟아지는 업무에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말 그대로 몸으로 때우며 일을 봐야 했다"고 토로했다.
심야 시간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보건소에 따르면 이날 자정께 술에 취한 40대 남성이 '메르스에 걸린 것 같다'며 순찰차를 타고 보건소를 찾았다. 체온도 정상이었고 기침 증상도 없었지만, '불안하다'는 말에 4시간에 걸쳐 검사와 상담을 진행했고 보건소 차량을 이용해 서북병원으로 이송했다.
여성 직원들에겐 살림을 병행해야 하는 것도 적잖은 부담이다.
한 여성 직원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지면 퇴근 뒤 집에 가면 진이 빠져서 아무 일도 못한다"면서 "나는 대학에 다니는 딸이 있어 그나마 다행인데, 다른 여직원들은 살림을 놓을 수도 없어 아마도 두 배로 피곤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아들이 있다는 약사 출신 직원도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아들을 친정으로 내려 보냈다고 했다.
서명옥 소장은 "국민과 접점에 있는 자치구의 보건소들이 메르스 확산을 막으려 온몸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상급기관에서도 행정지침 등 행정 소요를 발생시키기보다 현장에서 필요한 실질적인 지원을 강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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