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반세기 보낸 '인디언 머리' 美보병 2사단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6-09 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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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비용 절감효과 vs 일방적 한미관계 '빛과 그림자'
△ 미2사단 박물관에 전시된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미2사단 나무 현판 유물. 2015.6.9 andphotodo@yna.co.kr

한반도에서 반세기 보낸 '인디언 머리' 美보병 2사단

안보비용 절감효과 vs 일방적 한미관계 '빛과 그림자'



(의정부=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인디언 머리'로 널리 알려진 미군 제2보병사단이 오는 7월 1일 한국에 머문 지 50년을 맞는다.

미2사단은 매년 해온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 행사와 별도로 올해엔 한국 주둔 50년을 기념하기 위한 위문공연과 각종 행사를 열기 위해 분주하다.

1917년 창설된 미2사단은 제1·2차 세계대전 등에 참전했으며 미 태평양사령부 예하 제8군 소속이다.

경례 구호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를 뜻하는 '세컨드 투 넌(Second To None)'으로 미 육군을 대표하는 부대 중 하나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 7월 23일 첫 병력이 부산에 도착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유엔군 가운데 최초로 평양에 입성했으나 중공군과 예상치 못한 전투를 치르면서 전체 병력의 3분의 1을 잃기도 했다.

휴전협정 중에는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 포크 힐, 피의 능선 등에서 전투를 치르고 휴전 후인 1954년 8월 20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냉전과 베트남 전쟁으로 동북아시아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북한군이 휴전선에 병력을 집결한 채 무력시위를 하는 등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자 다시 왔다.

1965년 7월 1일 다시 돌아온 2사단은 한강 이북 중서부지역에서 북한군의 주요 남침로 방어를 맡았으며 북한 남침 시 미국이 자동개입하는 이른바 '인계철선' 역할을 해왔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두고 남북이 갈등을 빚던 중 미2사단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버렛 중위가 북한 군인들에게 도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알려진 이 충돌은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으로 몰고 갔다.

당시 미군은 북한에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보여주기 위해 사상 최대의 나무 제거 작전인 '폴 버냔 작전(Operation Paul Bunyan)'을 펼쳤다.

이 미루나무 한 그루를 베기 위해 F-4 전투기와 B-52 폭격기를 JSA 상공에 대기시켰다. 또 오산공군기지의 F-111 전투기들이 출격을 준비했고 미드웨이 항공모함이 한반도 근처로 이동했다.

미군은 북측이 나무 베는 작업을 또 다시 방해한다면 개성을 점령하고 황해도 연백평야까지 진격할 계획이었으나 북측의 유감표명으로 일단락됐다.

이후 남북한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JSA에서도 군사분계선을 넘지 못하게 됐다. 현재 JSA 장병이 머무는 곳은 '캠프 보니파스'로 불리고 있다.

냉전은 끝났지만 미2사단은 여전히 주한미군 병력의 4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의정부의 캠프 레드클라우드(800명)·캠프 스탠리(700명), 동두천 캠프 케이시/호비(5천900명), 평택 캠프 험프리(2천400명), 성남 K-16(600명) 등의 기지에 총 1만400명이 주둔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는 세계 최초의 2개국 군대 혼성사단인 한미연합사단이 발족했다. 미2사단장이 연합사단장을 겸직한다.

연합사단은 평시엔 한미 연합참모부 행태로 운영되다가 유사시에는 미 2사단 예하 부대와 한국군 제8기계화보병사단 소속 1개 여단이 합쳐진 연합 전투사단으로 편성된다.

2사단은 지난 50년 동안 한국 사회의 많은 빛과 그림자를 남겼다.

우선 주한 미8군의 주력으로서 한국의 안보에 크게 이바지해왔다.

9일 미2사단 사령부가 있는 캠프 레드클라우드를 방문한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근부회장은 "주한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절감되는 군사비만 해도 최대 약 36조원으로까지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또 "주한미군 군사시설 건설에 한국 업체 총 290개가 참여하고 있고 군수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우리 업체가 82개나 된다"며 "주한미군이 국내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경제적 효과를 강조했다.

하지만, 미2사단이 한국사회에 남긴 상처도 만만치 않다.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인근에서 미2사단 케네스 마클 이병이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윤금이 씨를 콜라병으로 잔인하게 때려 숨지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윤금이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주한미군범죄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또 지난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도로에서 여중생 신효순 양, 심미선 양이 미2사단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반미감정이 크게 달아올라 전국적인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미선 효순 추모비 건립위원회는 광복과 분단 70년을 맞아 오는 12일 오후 7시부터 캠프 레드클라우드 앞 공원에서 추모 음악회를 연다. 위원회는 "최근 탄저균 사건에서 보듯이 한미관계는 여전히 일방적이고 굴욕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초 한미 양국은 2사단 병력을 2016년까지 한강 이남 평택으로 모두 이전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이를 수정, 2사단 산하 210화력여단을 남기기로 하자 미군기지 이전을 전제로 낙후한 시 발전 계획을 추진해온 동두천 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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