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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여객선에서 바라본 군함도. |
"군함도 징용 제대로 알려야"…나가사키서 만난 양심
나가사키시·관련 전시장은 강제 노역 사실 철저히 외면
(나가사키=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 등 조선인 징용 현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일본 정부 구상에 비판적인 이들을 군함도가 있는 나가사키(長崎)시에서 꽤 만날 수 있었다.
5일까지 사흘간의 취재 중 만난 이들은 역사적 사실만큼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군함도에 가는 배를 탔으나 파도가 높아 상륙하지 못하고 돌아온 한 남성은 징용 사실을 제외하고 세계유산에 등재하려는 구상을 한국이 비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4일 말했다.
세이 �지라고 이름을 밝힌 이 남성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이익을 얻고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것을 언급하며 강제 노역의 "역사를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가사키 항구 근처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60대 남성은 군함도가 외지인들에게 관광지로만 인식되는 것이 안타깝다는 인식을 5일 드러냈다.
그는 "지금은 군함도라고 하지만 과거에는 감옥섬이라고 불릴 만큼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오기 힘든 곳으로 평가받았다"며 "희생된 이들을 위한 위령비라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군함도를 오가는 여객선 운영업체에 근무하는 중년의 직원은 방문객이 정작 관심을 두는 사항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을 신청하면서 1850∼1910년으로 기간을 한정한 것이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군함도에 있는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인 '30호 아파트'는 1916년에 지어지는 등 군함도 안내 팸플릿에 소개된 71개의 건축물 가운데 1910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지적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
다카자네 야스노리 (高實康稔) 일본 나가사키(長崎)대 명예교수는 기간을 한정한 것이 '일본의 근대화가 부국강병 정책과 이후 침략, 식민지배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감추는 전술'이라고 일침을 놓았는데 전문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이런 의견들이 현지 행정기관의 자료나 각종 전시시설에 반영되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일단 나가사키시는 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는 데 반대하거나 적어도 소극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나가사키시 공식 관광안내 사이트는 하시마탄광이 '일본의 근대화를 떠받쳤다'고 설명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있을 뿐 조선인 노동자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나가사키에 있는 군함도 자료관에서도 강제 동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곳 자료는 대체로 군함도가 일본의 산업 발전에 기여한 측면, 전후 군함도의 모습, 생활상, 변화 과정 등에 주목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전시물에는 한국어 설명도 병기돼 있지만 정작 한반도에서 끌려온 노동자의 존재는 기록돼 있지 않았다.
자신에게 불편한 역사를 외면하려는 심리나 역사 수정주의 등을 주장하는 우익 세력이 이런 절름발이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을 방문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일행 20여 명이 4일 나가사키의 한 선착장에서 강제동원 희생자를 추모하는 간단한 의식을 진행할 때 고성을 지르며 방해한 한 일본인 남성 같은 이들이 역사 감추기를 지지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세계유산등록에 사활을 건 관광업계 등이 입맛에 맞는 역사만 골라 알리려는 일본 정부의 전략에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이는 굳이 불편한 역사를 끄집어 내기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것이 세계유산 등록이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나가사키 조선소의 사료관이 자화자찬으로 가득한 것에서 보듯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처럼 징용 노동자의 희생을 과거에 발전 동력으로 삼은 당사자가 부끄러운 역사를 스스로 드러낼 것을 기대하기는 요원하다.
이런 가운데 7월에 나올 세계유산 등재에 관한 최종 결정이 역사인식을 두고 벌어진 논쟁의 승패를 일단 좌우하는 형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장기적으로는 균형잡힌 역사의식을 지닌 일본 시민을 얼마나 늘어날지, 또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낼지가 과거사 논쟁에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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