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무대 선 노숙인 '배우' "천지가 개벽한 느낌"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6-01 0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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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노숙생활 접고 사회복귀 향한 이재길씨의 도전


뮤지컬 무대 선 노숙인 '배우' "천지가 개벽한 느낌"

7년 노숙생활 접고 사회복귀 향한 이재길씨의 도전



(서울=연합뉴스) 설승은 기자 = "행복해요. 이렇게 창조적인 일을 해본 경험은커녕 일반인들과 어울린 적도 별로 없었는데, 조금씩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1일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에 따르면 서울역에서 2008년부터 7년간 노숙인으로 살다 지금은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이재길(54)씨는 뮤지컬 배우로 거듭나 연습에 한창이다.





이씨가 참여한 '레미제라블 인 코리아'는 청소년예술대안학교인 '꿈이룸학교'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5·18 민주화항쟁을 배경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지난달 29∼31일 무대에 오른 이 공연에는 직업 배우들과 대안학교 청소년들이 주로 참여했다. 이씨도 단역이지만 작은 힘을 보탰다.

31일 공연이 열린 영등포구의 꿈이룸학교에서 만난 이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가 공연에서 맡은 역은 기차역에서 신문을 보는 승객이나 치킨집 주인 같은 역할이다.

하지만 나름 대사도 있어 여간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계엄군을 피해 도망가는 여주인공을 보고 "시민군에 협조하는 자들이다", "쏴라!"며 외쳐야 해 수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고 한다.

이씨는 일용직 근로자로 공사장 일을 찾아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를 돌면서 노숙을 해오다 2008년 서울역 광장으로 왔다.

그러다 3년 전 센터의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해 사회복귀 훈련을 하게 됐고, 이제는 다른 노숙인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1년에 5∼6개월간 월급 48만원을 받으며 노숙인들의 잠자리 정리나 주변 청소, 노숙자 간 다툼이 났을 때 질서를 유지하는 등의 일을 하면서 동자동 쪽방촌에 좁지만 둥지도 틀었다.

센터는 이렇게 조금씩 사회로 복귀하려는 이씨를 위해 지난 4월 꿈이룸학교에 그를 배우로 추천했다.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학교 측은 직접 서울역 인근의 센터 사무실에 찾아와 오디션을 봤고, 이씨는 애창곡인 '낭랑 18세'를 불러 합격했다.

그를 담당하는 안영호 사회복지사와 다른 노숙인 한 명도 함께 공연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다른 노숙인은 결국 연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출연을 포기했다.

이씨는 연습하면서 왠지 모를 행복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를 "천지가 개벽한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이씨는 "배우들과 깔깔대는 청소년들 틈에 끼어 연습하다 보니 어엿한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며 "표현이 과할 수 있지만, 상한 음식을 먹다가 신선한 음식을 마주한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장애인 활동 보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소개하며 "내가 도움을 받았으니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서울역을 전전하며 살던 때가 엊그제 같지만 임대주택을 신청해서 올 연말쯤에 입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물론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 사회 안에서의 삶을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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