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키나파소 전 대통령 상카라 의문사 진상규명 착수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27 20: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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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콩파오레 쿠데타 때 피살…DNA검사 위해 유골 수습
△ (AP=연합뉴스)

부르키나파소 전 대통령 상카라 의문사 진상규명 착수

친구 콩파오레 쿠데타 때 피살…DNA검사 위해 유골 수습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류일형 특파원 =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로 불리는 부르키나파소 전 대통령 토마스 상카라 시신이 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한 무덤에서 약 30년 만에 유골들이 수습됐다고 26일(현지시간) AFP 통신이 보도했다.

유족 측 베네웬데 스타니스라스 상카라 변호사는 "상카라 전 대통령의 것으로 보이는 무덤에서 유해가 발굴됐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1983년부터 4년여 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카리스마 있는 혁명 영웅으로 존경받았던 상카라는 1987년 37세 젊은 나이로 가장 친했던 친구이자 혁명 동지인 블레즈 콩파오레가 주도한 쿠데타 때 살해당했다.

상카라와 그의 추종자들은 서둘러 매장됐고 그의 가족과 국민은 수년 동안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그의 시신이 실제로 와가두구 동부 외곽 다그노엔 공동묘지에 있는 것이 맞는지 알기를 원했으나 콩파오레의 장기집권으로 27년 동안 의문들을 풀지 못했다.

쿠데타 당시 콩파오레는 상카라가 자신을 체포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으며 자신에게 충성하는 군대가 정부청사에 진입했을 때 상카라가 경기관총과 권총을 꺼내 교전 중 사망했다면서 자신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친구를 재물로 집권한 콩파오레가 5선 연임을 기도하다 지난해 10월 말 민주화 시위와 쿠데타로 추방당한 이후 들어선 과도정부가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수용, 지난 3월 상카라의 유해발굴을 승인한 것이다.

발굴이 시작된 지난 25일 많은 시민은 공동묘지 밖에서 "우리는 진실을 원한다"고 구호를 외치면서 상카라 유해발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자신이 정비사라고 밝힌 이스마엘 사와도고(20)는 "상카라가 사망했을 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그가 의인이고 정의를 사랑했다고 들었다"면서 "우리는 진실을 알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르키나파소와 프랑스 출신 의료 전문가들이 상카라와 그와 함께 사망한 12명이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무덤 발굴을 감독하고 있다. 그들은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DNA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상카라는 1983년 부정부패와 프랑스 식민지 잔재 일소를 내세워 쿠데타를 일으켜 33세의 나이로 권력을 장악한 뒤 나라 이름까지 오트볼타에서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의 부르키나파소로 바꾸면서 야심 찬 사회경제 개혁에 나섰다.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반제국주의 혁명론자로 불리는 상카라는 재임기간 학생 수를 두 배로 늘리고 영아사망률을 낮추고 봉건 지주의 땅을 농부들에게 재분배해 아프리카 빈민들의 우상이 됐다.

그는 장관들에게 관용차를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저렴한 르노로 바꿀 것을 지시하고 수도 와가두구에 아직도 쉼터로 쓰이는 1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기도 했다.

이름난 밴드의 기타리스트였고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젊은이였던 상카라는 빈곤층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으나 중산층과 기득권층으로부터는 반발을 샀다.

또한 급진적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해 권위주의적 통치를 실시하면서 노동조합과 자유언론 활동도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 금지했다.

상카라의 개혁정책은 자국에서도 개혁세력들이 들고 일어날 것을 우려한 주변국 독재자들과 아프리카 대륙에 사회주의 개혁을 퍼뜨릴 것을 우려한 미국 등 서방국에도 위협적으로 비치면서 마침내 친구 콩파오레의 쿠데타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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