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터미널 화재 1년> ③끝나지 않은 피해자 고통과 회복의 길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25 07: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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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규명 오래 걸려…국가·사회가 재생 도와야…법개정 등 변화도


<고양터미널 화재 1년> ③끝나지 않은 피해자 고통과 회복의 길

원인규명 오래 걸려…국가·사회가 재생 도와야…법개정 등 변화도



(고양·의정부=연합뉴스) 우영식·권숙희 기자 = 재난 사상자와 그 가족, 이재민 등 피해자는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린다. 슬픔 속에서 사고원인 규명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고 당장 치료비·장례비 문제에 부닥친다. 보상과 재활의 길은 멀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피해자와 가족에게 드리워지는 재난의 짙은 그림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우리 사회의 역할을 새로이 묻고 있다.

◇ 계속되는 육체적·정신적·경제적 고통 = 고양터미널 화재 사고 다음날 유가족 10여 명은 감식현장을 찾아 사고 수습 책임자를 찾을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고양시는 부랴부랴 담당 공무원을 배치하고, 합동분향소를 설치했으며, 장례비를 CJ푸드빌이 부담하도록 조율했다. 대기업이 '선부담 후정산'에 응한데다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둬 지자체와 정치권이 그나마 빨리 대응한 덕이었다. 피해보상은 지난해 7월 유족과 7개 업체가 합의하며 마무리됐다. 추모비도 지난 1월 터미널 인근 공원에 세워졌다. 중상으로 입원했던 피해자도 모두 퇴원하고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와 가족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대안학교 교사 박모(40)씨는 화재 당시 학생 40여 명과 체험학습을 떠나려 터미널에 갔다. 박 씨는 전신의 35%에 3도 화상을 입어 지난해 10월까지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는 "매주 2차례 통원치료 받지만 사고 트라우마로 아직도 깊은 잠을 못 자고, 새 살이 나오면서 매우 가려운데다, 아직 쪼그리거나 양반다리로 앉을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박씨와 함께 터미널 지하에 약을 사러 내려가다 전신의 17%에 3도 화상을 입은 김모(18) 양도 2∼3년은 더 피부 이식수술 등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터미널 사고로 결혼을 몇 달 앞둔 아들을 잃은 중국 동포 김모(58·여)씨는 지난달까지 병원을 다니며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했다. 김씨는 "3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상황이라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1주기를 맞아 아들과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가 와 함께 추모비에 들를 계획"이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의정부 화재 사망자 유족들도 딸과 남편, 누나와 동생을 잃은 슬픔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구하다 전신 화상을 입은 엄마는 스물두 해의 짧은 생을 마감했으나 다섯 살 배기 아들은 아동복지기관에 맡겨졌다. 부상자는 물론이고 육체적 상처 없이 살아남은 사람들도 정신적,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집을 잃은 289가구 374명의 이재민은 인근 초등학교 강당에 텐트를 쳐놓고 지내다 학교 개학일이 다가오자 철수했다. 두 번째 임시숙소인 육군 306보충대에서 3개월간의 '난민 생활'을 하다 이곳에서마저 떠나야 했고 뿔뿔이 흩어져 삶을 이어가고 있다. 고양 터미널 화재처럼 대기업이 연관된 것도 아니고 소위 '이름 있는' 아파트도 아니어서 피해자들은 더욱 기댈 곳이 없었다.

지자체 지원 이재민에 사회재난 피해자가 포함하지 않아 법적 한계까지 부딪쳤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피해 주민들을 더 도와주고 싶지만, 제도적 근거가 없다"고 토로했다. 또 일부에선 왜 문제를 일으킨 측이 아닌 국가나 지자체를 상대로 주거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느냐는 삐딱한 시선도 있었다. 난데없이 피해를 본 것도 억울한데, 피해자와 가족들은 사고 이후 이런 과정들을 겪으며 더 큰 고통과 참담함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 재해구조법 개정 등 변화 움직임 = 사회재난의 경우 사고 원인을 밝히는 수사에만 수개월이 걸리고 정확한 시시비비를 가린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데는 수년까지 걸린다. 불가항력의 자연재난이 아닌 사회재난에서 국가나 지자체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다.

풍수해 등의 자연재난 외에 사회재난 피해자도 구호대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으나 제도적으로 수용되지 않았었다. 이미 지난해 9월 정호준 의원이 대표 발의한 관련 개정안은 여태껏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러던 중 국민안전처에서 지난 21일 이 같은 내용의 재해구호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중앙행정기관·정부출연연구기관·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숙박시설 또는 교육훈련시설·연수시설 내의 숙박시설 외에 병원급 의료기관을 임시주거시설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이재민 구호에 소요된 비용에 대한 구상권을 재난 원인자에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국민안전처는 "크고 작은 형태의 사회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이재민 구호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으나 사회재난 이재민이 구호의 사각지대로 존치되고 있다"고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경기도에서는 사회적 재난 사고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조례가 추진 중이다. 도는 지난달 23일 열린 도조례규칙심의회에 사상자 15명 및 재산피해 50억원 이상 규모의 사회적 재난 피해자에게 위로금을 지원하는 '경기도 지역 재난 피해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상정하려다 보완이 필요하다는 일부 지적에 따라 일단 보류됐다. 지자체들이 대형사고 발생 때마다 보상금을 지급하면 재정난이 심해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만약 조례가 통과되면 사망자 유족에게는 1인당 최대 1천만원이 지급된다. 의정부 화재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이 지급된다면 전국 첫 사례다.

소성규 대진대 법무행정대학원장은 "사회재난은 법적 소송을 거치거나 위원회를 구성해 책임 규명을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면서 "결론이 나올 때쯤이면 피해자들 입장에선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뒤"라고 설명했다.

소 원장은 "그러한 측면에서 중앙 정부에서 다 챙기지 못하는 것을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재난의 수습과 회생을 책임지는 선진국형 시스템을 빨리 제대로 갖추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과제다. 그러나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돈이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당연한 진리를 우리 사회가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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