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츠 개혁' 주역 페터 하르츠 박사 방한
노사정 대타협 모범사례 '獨 하르츠 개혁'의 明暗
고용 유연화로 일자리 늘고 실업률↓…실질임금·사회보장은 줄어
'하르츠 개혁' 주역 페터 하르츠 박사 방한
(세종=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지난달 초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결렬되면서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한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 주목받고 있다.
하르츠 개혁은 2002년 독일의 실업난과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시장개혁특별위원회를 이끌었던 페터 하르츠 박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하르츠 박사는 19∼20일 열린 '제6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했다.
이 개혁으로 2000년대 초반 10%대에 달했던 독일 실업률이 올해 초 4%대까지 떨어졌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벤치마킹하는 노사정 대타협의 모범 사례다. 경직된 고비용 구조였던 독일 노동시장을 유연하고 합리적인 구조로 바꿔 독일의 부흥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다만, 하르츠 개혁 후 실질임금이 감소하고 사회안전망이 축소됐다는 비판도 있다. 이 때문에 이를 한국에 적용하는 데는 면밀한 분석과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실업자복지 줄이고 노동시장 유연하게"…실업률 절반 '뚝'
2008년 금융위기를 가장 잘 견뎌낸 국가인 독일은 지금 전 세계의 칭송을 받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경제 상황이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2001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8%, 2002년은 0.2%에 불과해 성장동력을 거의 상실했다. 실업률은 2002년 10.1%까지 치솟아 실업자 수가 400만명을 넘어섰다.
'유럽의 환자'라는 조롱까지 받아야 했던 독일 정부는 과감히 환부에 손을 댔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폴크스바겐의 노무담당 책임자를 지낸 페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노동시장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렸다.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학계가 모두 참여했다.
노사정 대타협은 이뤄졌고 '하르츠 개혁'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핵심은 ▲ 실업자복지 축소 ▲ 노동시장 유연화 ▲ 창업 활성화 등 크게 세 가지다.
개혁의 메스는 실업 수당에 의존해 힘든 일자리를 기피하는 400여만명의 거대한 실업자군을 직접 겨냥했다. 당시 독일에서 실업자가 되면 전 직장에서 받은 소득의 67%를 최장 32개월까지 받았고, 이후에도 상당한 실업부조를 챙길 수 있었다.
개혁으로 실업급여 지급기간은 55세 미만의 경우 12개월, 55세 이상은 18개월로 확 줄었다. 실업부조도 구직 노력을 기울여야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저임금의 힘든 일자리라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환경을 만든 셈이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고 창업을 장려하려는 노력도 기울여졌다.
최고의 기능 장인을 뜻하는 '마이스터'로 대표되는 독일의 노동시장은 안정된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양산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경직성으로 인해 노동시장 진입이 어렵고 사업가의 채용 의욕을 꺾는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하르츠 개혁은 근로자 파견기간의 상한을 폐지하고 1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은 해고 규정에서 예외를 인정해 줬다. 신규 창업기업은 임시직 근로자를 최장 4년 간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세금 혜택도 확대해 다양한 근로 형태를 유도했다.
실업자의 자영업 창업 의욕도 끌어올리기 위해 연소득 2만5천유로까지는 3년간 보조금을 주고 세금을 깎아줬다.
그 결과 실업률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2005년 11.7%였던 실업률은 2007년 9%, 2010년 7.7%, 2012년 5.5%로 떨어지더니 올해 1월에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4.7%까지 내려갔다.
한국경제연구원 유진성 연구위원은 "하르츠 개혁은 독일의 실업률 하락과 고용 증가에 큰 역할을 했다"며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노동·기업규제 완화 등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제도적 개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실질임금 줄고 복지 축소" 비판…한국 실정에 맞는 도입 필요
하르츠 개혁은 독일의 경쟁력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하르츠 개혁으로 고용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독일 노동자의 평균 실질임금은 늘어나지 않고 되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업수당이 대폭 줄면서 노동자들이 과거보다 열악한 일자리를 받아들인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다.
결국 하르츠 개혁을 추진했던 사회민주당은 현 집권당인 기독민주당에 정권을 내줘야만 했다.
최근 방한했던 독일 노동시장 전문가 하르트무트 자이페르트 박사는 "하르츠 개혁은 정규직 일자리를 시간제 일자리 등으로 쪼개 나줘주는 형태로 전개돼, '질 나쁜 고용'만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동유럽의 저렴한 노동력이 독일로 쏟아져 들어와 전반적인 노동비용을 떨어뜨렸을 뿐, 하르츠 개혁 자체는 독일의 경쟁력 회복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르츠 개혁을 국내에 적용하기에는 국내 노동시장이 너무 열악하다는 지적도 있다.
고비용의 실업자비용에 시달렸던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실업자 안전망 자체가 너무 취약한데다, 고용형태도 이미 비정규직 근로자가 넘쳐날 정도로 유연화돼 노동시장 유연화가 별로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실업자가 구직급여를 받는 기간은 최장 8개월, 구직급여 이후의 개별연장급여를 받는 기간도 2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이 32개월에 달했던 독일과 비교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박명준 박사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이미 하르츠 개혁 이후의 독일보다 더 유연화한 형태"라며 "노동시장 유연화보다는 고용 서비스 제고의 측면에서 하르츠 개혁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독일이 관료주의에 빠진 연방고용청을 연방고용공단으로 바꾸고, 일자리 중개의 성과에 따라 공단 직원들을 평가해 취업 알선 서비스의 질을 확 높인 것을 말한다.
하르츠 개혁의 주역인 하르츠 박사는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을 주제로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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