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의 선비를 다시 찾다..20일부터 영주선비문화축제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19 0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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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불안증폭 시대에 안빈낙도 정신 돌아보는 계기


청빈의 선비를 다시 찾다..20일부터 영주선비문화축제

물질만능·불안증폭 시대에 안빈낙도 정신 돌아보는 계기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1990년대 초반,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군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문인 나카노 고지(中野孝次)가 쓴 '청빈(淸貧)의 사상(思想)'이 그것이었다.

연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열도를 태풍처럼 휩쓴 이 책은 재산과 지위, 명예를 탐닉하며 질주해온 시대상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됐다. 욕망을 좇아 쉴새없이 내달려왔으나 공허하고 불안한 내면의 그림자는 자꾸만 짙어가는 데 대한 회의와 자성이었다.

부자가 되기 위해 안달하는 세태에 난데없는 청빈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건 단순한 가난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사상과 의지에 따라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간소한 삶의 형태였다.

그랬다! 부자들은 소유에 사로잡혀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심한 갈증과 불안, 공복감으로 시달렸다. 재산 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정신적 자유마저 상실했다. 금전이든, 자리이든, 이름이든 주객이 뒤바뀐 채 부자들은 정작 그 주인이 아닌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청빈의 사상'은 그 시대상을 냉정하게 직시토록 했다. 간소한 삶의 형태와 방식을 통해 자신을 찾고 이웃을 사랑하며 우주와 하나가 되는 길을 찾자고 촉구했다. 소유를 버리고 존재를 얻었던 선인들의 사례를 거울삼아서였다.







시대상의 흐름으로 볼 때 현대의 한국은 일본의 발자취를 상당부분 재현하는 듯 보인다. 효율과 성장, 물질과 명성 등 외면적 가치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인격과 협력, 정신과 자족 같은 내면적 가치는 뒷전에 내팽개쳐져 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그 집착의 폐단과 후유증을 깨닫고 이에서 깨어나려는 움직임 또한 서서히 일고 있다. 물질만능으로 치닫던 일본이 그랬듯이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자성의 기미가 보이고 있는 것. 수기안인(修己安人·스스로를 닦고서 남을 편안하게 한다)과 안빈낙도(安貧樂道·가난함 속에서도 편안하게 도를 즐긴다)의 삶이 지니는 가치에 눈길을 서서히 돌리는 것이다.

오는 20일부터 24일까지 경북 영주시 선비촌에서 열리는 '영주 선비문화축제'는 청빈과 지조의 의미를 반추하는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영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있는 곳으로 고려의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있다. 안향 휘호대회 등의 행사로 옛 선비들의 삶을 오늘에 되살려 보고자 하는 것. 축제는 올해로 8회째를 맞는다.

또 하나의 선비문화축제는 경남 산청에서 매년 가을에 펼쳐진다. 그 역사는 영주보다 깊어 올해로 15회째다. 산청 선비문화축제는 과거에 합격했으나 스스로 초야에 묻혀 위기지학(爲己之學·자기 인격수양을 위해 공부한다)과 후학 양성의 기쁨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았던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기리고자 한다.







역사의 지성이자 삶의 모범이었던 선비는 과연 누구일까. 최근덕 전 성균관장은 1999년에 낸 에세이집 '우리의 선비는 이렇게 살았다'에서 선비의 역사와 요건, 대표사례들을 하나하나 풀어내 언급한 바 있다. 나카노 고지가 '청빈의 사상'에서 그랬듯이 청빈과 지조로써 삶의 줄기를 스스로 잡고 이끌었던 정신적 기개를 조명했던 것.

일반적으로 조선조만을 선비의 시대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길다. 고구려 고국천왕 때의 선비 을파소(乙巴素)는 "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어 살고 때를 만나면 벼슬하는 것이 선비의 처세다"고 설파했다. 때가 되면 세상을 위해 출세(出世), 즉 벼슬길로 나아가되 때가 아니다 싶으면 조용히 초야에 묻혀 생업에 종사한다는 신념을 지켰던 것이다.

이 같은 가치관은 후세에도 그대로 전승되며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이 그랬듯이 앞서 언급한 남명 조식도 임금의 부름에도 번번이 응하지 않은 채 지리산 아래의 산천재(山天齋)에서 유유자적하며 학문과 수양에 정진했던 것.







선비는 무엇보다 가난을 즐길 줄 안다. 타고난 성품 그대로 살아가는 것을 삶의 본령으로 삼되 물질의 욕망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한 가운데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 안빈낙도의 삶은 결코 부끄러움이 아니요 자존감 높은 처세였다.

선비는 또한 자연에 따라 자연 그대로 사는 것을 즐겼다. 정직하고 자연스럽게 사는 게 인생이라고 보며 무욕의 삶을 추구했다. 그런 가운데 풍류를 즐기며 세상을 검박함 속에 넉넉하게 살아갔던 것.

선비의 진면목은 죽음관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망국의 을사늑약 때처럼 시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앞장서 목숨을 내던져 살신성인(殺身成仁·자기를 죽여 인을 이룩한다), 사생취의(捨生取義·목숨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한다)를 몸소 실천한다. 죽음을 맞는 마지막 순간에도 고종명(告終命)의 자세로 의연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 같은 선비의 자세는 용어와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동서고금에 한결같다. '낮게 생활하고 높이 생각하라'는 19세기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명언도 하나의 사례. 선비문화축제는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안다), 지족상락(知足常樂·만족할줄 알면 항상 즐겁다)의 자세로 청빈하고 지조있는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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