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판 '동서 포럼' 이끄는 정병호 교수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15 1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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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 떠돈 한민족…치유와 통합 절실하죠"
귀향 동포 모아 소통 프로그램 마련하고 사진전도 개최

<인터뷰> 한국판 '동서 포럼' 이끄는 정병호 교수

"타향 떠돈 한민족…치유와 통합 절실하죠"

귀향 동포 모아 소통 프로그램 마련하고 사진전도 개최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탈북자, 조선족, 재미동포, 고려인, 재일동포가 한자리에 모였다.

1박 2일 동안 합숙하며 각자가 살아온 체제, 문화, 가족사를 털어놓아야 한다.

분위기가 어색하진 않을까. 혹시 오해만 커지는 건 아닐까.

의외로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치유의 현장이었다"는 게 이 프로그램을 이끈 정병호(60·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정 교수는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근현대사에서 한민족만큼 전 세계로 흩어져 타향살이했던 민족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의 삶을 통합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말처럼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민족은 수많은 이름 아래 살아야 했다.

일제에 의해 척박한 땅으로 내몰린 만주 조선인, 멕시코 애니깽을 시작으로 사할린 동포, 중앙아시아 고려인, 재일동포, 중국 조선족, 파독 광부, 재미 한인까지….

정 교수는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 한인을 만나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경기도 안산의 이주민 마을을 누볐다.

2012년 9월부터 지난해까지 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에서 진행한 '한민족 다문화 삶의 역사 이야기'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취지는 고단한 타향살이를 겪고 고국에 돌아온 한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소통하도록 하는 것.

"우리 사회가 점점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죠.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이 주변에 많아졌어요. 하지만 또다른 이방인이 있습니다. 고국에 돌아온 한인 동포들이죠. 이들은 같은 한민족인데도 다른 체제, 다른 문화, 다른 언어로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고국에 돌아와서는 차별과 냉대를 받아요."

3년 동안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원은 70여 명.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고향 땅에 돌아온 한인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안산의 한양대 ERICA캠퍼스에서 6∼8명씩 모여 1박 2일 동안 소통하는 기회를 얻었다.

어떤 얘기가 오갔을까.

"탈북자와 남한 사람이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체제, 문화, 이념 등 하나하나가 다르기 때문이죠. 그런데 둘 사이에 조선족이나 재미동포가 끼어들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어색해진다고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새로운 이해의 폭이 생겨요. 교집합이 한 개에서 두 개로 늘어나니까요. '나 같아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분위기가 되죠."

이 프로그램은 독일에서 통일 이후 시작된 '동서 포럼'(Ost-West Forum)의 한국판에 해당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나 동독과 서독 주민의 이질감은 여전했다. 1998년 악셀 슈미트 괴델리츠는 동서독 주민이 5명씩 모이는 '동서 포럼'을 만들어 2박 3일 동안 상호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모임이 되도록 했다.

이렇게 시작한 '동서 포럼'은 지금까지 3천500여 명이 거쳐가며 동서독 화합의 대명사가 됐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있을까.

"사할린 동포가 조선족과 만나면서, 재미동포가 북한 이탈 주민과 얘기하면서 '아 나만 이렇게 산 것이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거죠. 이렇듯 한민족 다문화 상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커지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해질 거라고 봅니다. 단일 국적, 단일 문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초(超)국가적 한민족의 문화 다양성을 인정해야죠."

정 교수는 이렇게 만난 한인들의 초상을 사진으로 담아 일반인에게도 선보이기로 했다.

지난 14일부터 오는 28일까지 서울 중구 수하동 미래에셋 센터원빌딩 국제교류재단(KF) 갤러리에서 '국경을 넘는 삶의 역사-나는 미래다' 사진전을 열고 있다.

사진작가 손승현 한국예술원 교수는 귀환 한인들의 주름진 얼굴과 수줍은 미소, 가족과 맞잡은 손 등을 차분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정 교수는 "한국 사회의 주류 역사에서 배제된 채 살아온 한민족 구성원의 삶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자 한다"면서 "이를 통해 국경을 넘어 폭넓게 전개되고 있는 한민족 다문화 현상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3년간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한 결과는 하반기 논문과 단행본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정 교수가 이처럼 탈북자, 귀환 한인 등 이른바 '경계인'에게 꾸준한 관심을 두는 이유는 뭘까.

그는 1997년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이사, 2003년 남북문화통합교육원 원장, 2007년 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초대 원장 등을 지냈다.

현재도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을 맡아 현장을 지키고 있다.

"알고 보면 우리 주변에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이 매우 많아요. 할아버지가 실향민이라거나, 고모가 미국으로 간 결혼 이주 여성이라거나, 대학 동기 중에 모국으로 유학 온 해외 입양아가 있다거나…. 해방, 분단, 냉전을 거쳐 탈냉전에 이르기까지 격랑을 거듭했던 근현대사 때문이죠. 탈냉전이 본격화하면서 앞으로 한민족 이주민이 거주국과 한국을 넘나들며 교류하는 현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정 교수가 청소년, 대학생의 한민족 공동체 인식을 키우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탈북 청소년과 남한 청소년도 1박 2일 동안 함께 지내도록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겠죠.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점점 비슷한 점을 찾기 시작하더라고요.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어요. 21세기에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주자 집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문화적 토대가 쌓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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