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먹튀' 자본이 외국인 가장한 한국인이라면?
이시백 장편 '검은 머리 외국인' 출간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사들이고 2012년 되팔며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론스타는 10년도 채 안 돼 매각 대금 등 4조7천억원을 챙기며 '먹튀'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론스타는 한국 정부 때문에 충분히 돈을 벌지 못했다며 투자자-국가소송(ISD)까지 제기했다.
그런데 만약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사들일 때 동원한 자금 주인 상당수가 외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을 가장한 한국사람이라면 어떨까. 그것도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고위 관료와 거대 로펌이 연결돼 있다면.
이런 일이 이시백의 장편소설 '검은 머리 외국인'에서 일어났다. 소설 배경은 한국이 아니라 카리브 해에 있는 '까멜리아'라는 나라다.
소설은 '까멜리아 은행'을 미국 사모펀드 '유니온 페어'가 인수하는 과정에 저항하다 은행에서 해고당하고 사채업을 하던 주인공 '루반'이 은행 인수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와 함께 경제 관료들의 탐욕과 타락상, 매각 저지 투쟁을 둘러싼 노조 내부의 갈등, 초국적 자본의 행태 등을 실감 나게 그렸다.
공적 가치보다는 자신들의 인맥과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고위 관료들의 행태,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초국적 자본 운영자, 이들과 엮인 대형 로펌 등의 물고 물리는 이해관계의 실체가 폭로된다.
이시백은 소설이 모두 상상에 의해 쓰였으며 대한민국의 어떤 특정 사실이나 인물과도 무관하다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상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소설은 자본가와 관료를 '악'으로, 이에 맞서는 사람을 '선'으로 세우지 않는다. 강경파 동료 조합원을 내치는 은행노조 구성원, 엄마의 신장을 팔아 만든 돈을 노름에 날리는 아들의 모습 등을 통해 까멜리아의 비극이 '가진 자'만의 것이 아니라, 자본이 부추기는 욕망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꼬집는다.
금융 용어와 체계를 공부하느라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다는 이시백은 작품을 쓰면서 어린 시절 소풍을 갔다가 '야바위꾼'에게 용돈과 간식을 다 넘겨준 일이 생각났다고 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금융이라는 것이 이렇게 복잡하고 다단한 게 나와 같은 어수룩한 사람들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철옹성을 쌓고, 그 안에서 화투짝으로 사과와 김밥을 홀려 대는 야바위를 하기 위함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레디앙. 255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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