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개혁> "혁신의 위기"…정부 R&D 지원체계 대수술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13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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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투자율 세계 1위, 성과는 미흡…출연연을 '중소기업연구기지'로 육성

<재정개혁> "혁신의 위기"…정부 R&D 지원체계 대수술

R&D 투자율 세계 1위, 성과는 미흡…출연연을 '중소기업연구기지'로 육성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정부가 연구개발(R&D) 지원체계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한 데에는 산업현장의 R&D 수요와 정부 과제 간 괴리가 커 성과가 제대로 창출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율은 4.15%로 세계 1위 수준이고 정부 R&D 투자도 10년간 연평균 8.7%씩 증가, 올해 18조9천억원을 기록으나 출연연구기관의 연구개발 생산성은 미국 공공연구소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등 규모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창조과학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는 13일 '정부 R&D 혁신방안'에서 현재 R&D 분야의 최대 문제는 '전략 없는 R&D 투자확대'가 R&D 현장에서 '혁신의 위기'를 불러온 점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R&D 지원체계를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개편하고 '과학기술전략본부'(가칭)을 신설해 정부 R&D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기로 하는 등 대수술에 나섰다.

그러나 과학기술계에서는 혁신방안이 지나치게 응용연구에 치우치고 정부 R&D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과학기술전략본부'(가칭)의 위상이 모호한 점 등을 지적하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어 시행을 놓고 진통이 예상된다.

◇수술대 오른 'R&D', 무엇이 문제 = 정부는 R&D 현장의 개선 과제로 앞선 기술을 따라가는 '패스트-팔로워(Fast-Follower)' 관행을 꼽았다.

뛰어난 기술을 따라잡는 식으로 R&D를 하면 그 단계에는 오를 수 있지만 이를 넘어서는 혁신을 일으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 민간, 산·학·연, 정부 부처, 25개 출연연 간 R&D 영역이 충돌하면서 시너지는커녕 과제 중복, 협업 부족이 반복되고 R&D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매년 막대한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출연연이 시장 수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홀로 연구'를 하는 방식도 개선할 점으로 꼽았다.

R&D 과제선정은 물론 평가와 관리체계까지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연구현장에 행정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도 고려됐다.

무엇보다 R&D 전략을 세우고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는 정부의 R&D '컨트롤타워' 역할이 미흡했다는 자성도 혁신안에 반영됐다.

정부는 우선 R&D 혁신의 방향으로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 산·학·연의 역할 차별화라는 큰 그림을 내놨다. 정부는 민간이 하기 어려운 장기·기초·원천연구와 중소기업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산·학·연의 R&D 역할 차별화를 위해 사업공고 때부터 기초·원천·상용화 연구 별로 지원대상을 명확히 설정하기로 했다. 특히 상용화 연구과제는 수행기관을 점차 중소·중견기업으로 제한할 계획이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과학기술심의회(국과심) 재편도 추진된다. 국과심의 사무국 역할을 하는 '과학기술전략본부'를 미래부 안에 독립기구로 신설해 R&D 계획과 예산 분배·조정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정책 분야의 3개 연구기관을 통합해 과학정책 싱크탱크인 '과학기술정책원(가칭)'을 설립하고 부처별로 분산된 18개 R&D 전문관리기관을 통합, 개편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하지만 혁신안의 초점은 무엇보다 출연연 기능을 대폭 손질하는 데 맞춰졌다.

◇'R&D 괴리의 중심' 출연연 '변화' 속으로 = 정부는 정부과제 수주(PBS)와 '나홀로 연구'라는 오랜 관행에 갇혀 있는 출연연을 일대 쇄신하겠다는 입장이다.

출연연은 미래 선도형 기초·원천기술 개발에 나서되 중소·중견기업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도록 '연구 미션'을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출연연이 보유한 기술과 인력,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해 '중소·중견기업의 연구소' 역할을 하도록 변화를 주겠다고 밝혔다.

정부 재정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산업기술 연구 중심의 출연연인 전자통신연구원(ETRI) 화학연구원, 기계연구원 등 6개 출연연을 민간 과제 수탁실적과 정부 출연금 지원규모를 연계하는 한국형 '프라운호퍼' 연구소로 개편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이 R&D를 주도할 수 있도록 기업이 출연연·대학(공공연)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R&D 과제를 신청했던 방식에서 기업이 먼저 과제를 신청해 선정된 뒤 차후 연구에 함께할 공공연을 동참하도록 R&D 과제 신청 절차를 바꾸기로 했다.

다만 '예산만 따내면 끝'이라는 식의 '좀비기업'을 막기 위해 기업의 비용 부담률을 25%→35%로 높이고, 현금으로 낼 분담금 비율도 10%→30%로 대폭 강화했다.

정부는 R&D 과제 평가에서도 논문·특허 건수 중심의 양적 평가를 지양하고, 정성적 평가를 강화해 도전적 연구 촉진, 연구 목표수정 및 과제 성실수행 인정 등 성과창출형 평가·관리체계를 도입할 방침이다.

아울러 소액 연구과제의 중간평가 폐지, 친인척·사제관계를 제외한 연구자 소속기관 전문가도 평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상피 제도' 완화, 선정평가위원 일부가 최종 결과 평가에 참여하는 '책임평가위원제'도 추진한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정부 R&D 혁신방안에 대해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과기부 내부 조직으로 만들어지는 '과학기술전략본부'가 부처 간 조율과 조정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으며 독일의 독특한 사회·문화가 반영된 프라운호퍼 연구소 방식이 국내에 적합한지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혁신안이 기초연구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단기적인 경제성과 창출 중심으로 마련된 것 같다. 특히 연구현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과학기술정책원 설립은 신중해야 한다"며 "혁신안이 과학기술 흔들기에 그쳤던 과거 사례의 반복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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