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침> 지방(시신수습 임무 영국군 노병…)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5-09 19: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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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수습 임무 영국군 노병 "부산에 묻히고 싶다"
말기암 참전용사 27년간 매년 유엔기념공원 방문
△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6·25전쟁 때 영국군으로 참전한 제임스 그룬디(83) 씨가 부산시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묘지를 둘러보고 있다. 27년간 자비로 매년 부산을 찾은 그룬디 씨는 말기암환자로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다. 2015.5.9 ccho@yna.co.kr

<고침> 지방(시신수습 임무 영국군 노병…)

시신수습 임무 영국군 노병 "부산에 묻히고 싶다"

말기암 참전용사 27년간 매년 유엔기념공원 방문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다음에 부산에 오게 된다면 전우들이 안장된 이곳에 묻히고 싶습니다."

9일 부산시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제임스 그룬디(83)씨의 목소리는 말기 암환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있었다.

그는 부산을 제2고향이라고 말한다.

그룬디씨는 6·25 전쟁 때인 1951년 2월 영국군으로 참전했다.

19살의 나이에 이국의 땅에 온 그는 영국에서 장례예식과 관련된 일을 했다는 이유로 유엔군의 시신을 수습해 유엔군 묘지로 옮기는 '시신처리 전담팀' 소속으로 1953년 6월까지 근무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을 찾아다닌 그룬디 씨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신에 인식표가 없거나 이름표가 없을 때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참혹했던 기억을 더듬었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에도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이 떠올라 괴로워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6·25전쟁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악몽이 떠올라 일부러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맨체스터 맨시티 축구단에서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던 그가 다시 부산을 찾은 것은 1988년. 당시 한국정부 초청으로 영국군 참전용사 100여명과 부산을 방문한 이후 매년 자비로 한국을 찾고 있다.

유엔기념공원에서 먼저 떠난 전우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임무가 됐다.

부인과 사별한 뒤 가족이 없는 그는 유엔기념공원에서 홍보업무를 담당하는 박은정(38·여)씨에게 자신을 할아버지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리고 박씨를 자신의 수양 손녀로 삼았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있는 박씨의 집에 머무는 것도 그의 부산 방문 이유 중 하나다.

그룬디씨는 영국에서 신문광고를 내고 유족들로부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참전용사들의 사진을 받고 있다.

애절한 사연과 함께 받은 300여 장의 사진은 유엔기념공원에 전시되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도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은 사연과 함께 한 참전용사의 사진을 들고 왔다.

그룬디씨는 "참전용사들의 얼굴 사진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유족들의 애절한 사연을 들으면 서로 감정이 북받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때가 많다"고 말했다.

척추암 말기 환자인 그는 장거리 비행이 위험하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국행을 강행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부산 방문이다.

고령에 암이 다리로 전이되는 등 건강상태까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박씨에게 영국에 돌아가지 않고 바로 유엔기념공원에 있는 동료들 옆에 안장될 수도 있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전우들이 있고 박씨 가족이 있는 부산에서 계속 머물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부산시 남구에 있는 예문여고와 부경대에서 특강을 하고 오는 18일 출국하는 그룬디씨는 전우들과 수양손녀가 있는 부산에서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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