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합니까> ①"광고총량제로 지상파 쏠림"(임철수 신문협회 부장)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달 24일 확정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상파TV에 대해 유료방송처럼 프로그램·토막·자막·시보 등 4개 유형별 규제를 없애고 프로그램 편성시간당 허용한도만 정하는 광고총량제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임철수 한국신문협회 전략기획부장은 지상파TV 광고총량제 도입에 대해 "신문 등 타 매체의 광고가 지상파로 쏠려 경영기반이 취약한 신문의 존립기반이 더 좁아질 것"이라고 반대하며 신중한 재검토를 요구했다.
다음은 임 부장의 광고총량제 도입 반대 이유다.
▲ 임철수 한국신문협회 전략기획부장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 과정에서 한국신문협회 등 지상파방송을 제외한 나머지 매체들이 수차례에 걸쳐 낸 반대 성명·의견이나 설문조사, 공청회 등에서 지적된 문제점들을 시정하지 않은 채 거의 원안대로 처리했다.
광고총량제가 시행되면 신문 등 타 매체의 광고가 지상파방송으로 쏠려, 그렇지 않아도 경영기반이 취약한 신문의 존립기반이 더욱 좁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 때문에 신문협회는 10년 넘게 제도의 도입을 반대해 왔다. 신문협회 회원사 발행인 44명이 연명으로 반대하고 공개질의서까지 채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국내 광고시장의 총 규모는 연 9조 6천억 원 수준이다. 지난 수년간 계속 그 수준이다. 앞으로도 늘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 및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전체 광고규모가 커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광고총량제 도입은 신문 등 다른 매체의 광고물량을 지상파방송으로 몰아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광고총량제 때문에 지상파로 이동할 광고액은 조사기관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연간 1천억∼3천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대부분 신문광고에서 떠나는 금액이라는 것이 신문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신문의 연간 광고매출은 1조 6천억원으로, 광고총량제로 인해 신문은 즉각 광고 매출의 10∼20%까지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광고총량제에 대해 '업계 간 밥그릇 싸움'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몰아준다면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된다. 나아가 우리는 이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신문 죽이기'라고 본다.
광고총량제 도입 여부는 방송법 시행령으로 결정되므로 법제의 형식만 따지면 방통위 소관으로 보인다. 그러나 광고총량제가 도입되면 그 영향이 지상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문 등 나머지 매체의 존립을 직접 타격한다.
방통위가 독단적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라 미디어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는 것이 적절하다. 부처 간 합의가 힘들다면 정책조정권이 있는 청와대가 나서야 했다.
방통위는 2014년 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50여 개 기관·단체를 대상으로 60여 차례의 의견수렴을 진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신문 등 다른 매체의 주장과 의견 핵심내용은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벌인 여론조사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이 반대하는데도 강행 처리했다. 국민마저도 무시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광고총량제 도입으로 인한 광고 이동 효과에 대한 최근 몇 년간의 조사결과가 기관별로 큰 차이가 나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뢰할만한 객관적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지상파방송과 나머지 매체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면서 논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논쟁을 정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방통위는 수수방관했다. 이러한 갈등양상을 종식하기 위해 신문협회는 지상파, 유료방송, 신문, 잡지, 정부 등 각 이해당사자들이 추천하는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 정밀하게 도입효과를 다시 분석해 볼 것을 제안했지만 방통위는 이마저도 무시했다.
방통위는 해외 대부분의 국가가 광고총량제를 전면 허용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주요 국가의 공영방송은 광고 자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진실에 부합하다. 영국, 일본,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공영방송은 광고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스페인, 벨기에, 호주, 뉴질랜드 등 공영방송의 광고를 허용하는 국가의 경우에도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광고를 허용하고 있다. 해외 공영방송의 약 절반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광고 수입 비중이 1∼27%에 그친다. 국내 지상파방송의 광고 수입 비중은 57.3%(2011년), 53.3%(2012년), 51.4%(2013년)에 달한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독과점적으로 무료 사용하는 지상파방송과 유료방송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매체별로 고유한 가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특히 이번 개정안은 민간 유료방송보다 지상파방송에 더 많은 광고시간을 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방통위는 시간당 광고총량을 지상파방송은 평균 9분, 최대 10분 48초. 유료방송은 평균 10분 12초, 최대 12분까지 허용해 지상파와 유료방송간 비대칭규제를 유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일반방송 채널은 시간당 평균 2분씩 지역 케이블TV사업자(SO)에 지역광고 시간(일명 큐톤)을 제공해야 한다. 반면 지상파는 이를 제공하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지상파방송이 9분을 광고할 때 일반방송채널은 8분 12초밖에 광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특정 매체에 편향된 정책을 펼치는 것은 전체 매체환경의 조화와 균형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광고총량제가 허용되자마자 지상파방송은 다음 수순으로 타 매체에 광고총량제보다 더 큰 충격을 줄 중간광고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시행령이 의결되자마자 방송계는 "방송광고 제도 정상화라는 여정의 첫발을 내딛는데 그치지 않고 지상파방송 중간광고 허용과 신유형 광고 개발 등을 더 적극 추진해 달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방통위의 의결을 기정사실로 해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 향후 절차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 방송광고 정책은 방송뿐 아니라 전체 미디어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므로 매체 간 균형발전, 형평성, 타 매체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통위, 문체부 등 관계부처, 신문·유료방송 등 여러 매체의 이해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종합적인 논의를 통해 신중히 재검토해야 한다.
만약 광고총량제가 방통위가 의결한 원안대로 확정·강행된다면 현 정부는 '먹통정부' '지상파 편향정부'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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