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반성장의 길> ④ 선진국은 정착…한국은 갈 길 멀어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우리나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과 상생이 본격 화두로 떠오른 것은 2010년 12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하고 나서부터다.
하지만 많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대기업 자율적으로 중소 협력업체와 상생하는 동반성장 문화가 자리 잡았다.
모범적인 동반성장 사례로 꼽히는 외국 대기업 사례를 소개하고 우리나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나아갈 방향을 짚어본다.
◇ '부품업체와 성과공유' 도요타
일본 자동차 생산업체 도요타는 모기업과 협력업체가 체계적으로 분업하는 협력관계로 경쟁력을 쌓아온 대표적인 회사다.
내부 제조비율은 25%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1차 부품업체와 지역 내 소재·부품·조립 등의 기업들로 구성된 이른바 '분업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한다.
도요타는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동반성장 모델로 꼽히는 성과공유제를 1959년 처음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과공유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원가 절감, 품질 개선, 생산성 향상 등을 추진하고 성과가 나면 이를 사전에 계약한 대로 나누는 제도다.
도요타는 강력한 원가 절감을 추진하면서도 부품업체와 성과를 공유했다. 2000년대 초반 30% 원가 절감을 추진하는 'CCC 21' 운동을 펼치면서 부품업체에 원가절감으로 얻은 수익을 돌려준 사례가 대표적이다.
부품업체에 전속 거래관계를 강요하지 않고 개방적인 거래 관계를 인정해 해당 업체의 대형화와 전문화를 이끈 점도 도요타의 특징이다.
1949년 도요타 부품사업부에서 독립한 자동차 부품업체 덴소는 창립 초기부터 도요타 이외 기업에도 활발하게 납품했다.
덴소는 이처럼 개방적인 거래관계를 넓혀가면서 도요타 이외 기업에 공급하는 비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려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로 성장했다.
◇ '유망 中企 투자해 동반성장' 인텔
세계 최대 반도체회사 인텔은 1991년 자체적인 투자 조직인 인텔캐피탈을 만들어 중소기업과 전략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중소기업 성장을 지원하면서 자사 제품 시장도 확대하려는 전략이다.
인텔캐피탈을 통해 모바일, 인터넷, 가전, 사무자동화,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의 유망 중소 기술기업에 투자한다. 지금까지 인텔이 투자한 업체는 1천개가 넘는다.
예를 들면 2011년에는 휴대성을 강화한 인텔 PC '울트라북'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3억 달러 규모 '울트라북 펀드'를 인텔캐피탈을 통해 조성한 바 있다.
울트라북에 알맞은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함께 만들고 기술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세계 각국의 울트라북 관련 업체에 투자한 것이다.
인텔캐피탈은 유망 중소기업을 선별해 투자하는 데에서 나아가 중소기업의 동반자 역할을 지향한다. 정기적으로 업체를 방문하고 수시로 연락해 애로사항을 듣고 개선 방안을 함께 고민한다.
투자한 중소업체의 새로운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경영 자율성을 존중하는 점도 특징이다. 투자한 기업이 반드시 인텔과 독점적인 거래를 해야한다는 원칙은 없다.
◇ '공유가치창출' 네슬레
세계 1위 식품기업 네슬레는 동반성장의 핵심 요소로 꼽히는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 실현에 가장 적극적인 업체 중 하나로 유명하다.
네슬레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공유가치창출은 주주들에게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개념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업 경쟁력과 주변 공동체의 번영이 상호 의존적이라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이를테면 제품 원료를 생산하는 농촌지역의 농가를 지원해 양질의 원료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으면서 고객 기반을 강화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식이다.
네슬레는 인도 모가 지역에서 50년 넘게 원유를 공급받고 있다. 원래 관개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송아지 사망률이 60%에 달하는 등 열악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네슬레가 원유 공급지의 관개 시설과 위생상태를 개선하고 젖소 관리 기술을 전수하는 등 지역과의 동반 성장에 나서면서 환경이 개선됐다.
젖소의 우유 생산성이 50% 증가하고 원유 공급 농가도 400배 이상 늘었다. 인도 현지에서 네슬레 제품 소비도 늘어 네슬레가 인도 시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 한국 기업이 나아갈 방향은
동반성장위는 대중소기업간 사회적 갈등문제를 발굴하고 논의해 동반성장 문화를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워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등을 운영했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동반성장위 출범 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인식과 태도가 바뀐 점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실제로 의미 있는 동반성장이 이뤄졌는지는 물음표다. 경제력의 대기업 집중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동반성장을 주장하면서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결국 '갑질' 문제가 터지기도 했다"며 "동반성장 문화가 정착하려면 우선 대기업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대기업이 '보여주기' 식 상생 활동에 치중하고 동반성장에 대한 진정성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중소기업과의 상생하려면 대기업 스스로 일정 기간 양보하고 비용을 감내하면서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해야 하지만 최근에는 불황 등과 맞물려 상생경영이 제대로 이뤄지는 대기업이 많지 않다"고 진단했다.
또 그는 "불황이 길어지면서 대기업이 동반성장에 임할 의지나 능력이 후퇴하고, 상생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아갈 유인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동반성장 문화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이동주 연구위원은 "동반성장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함께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하는 개념으로 가야 하는데 그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며 "중소기업 사업 영역 보호에 집중하면서 '동반'만 있고 '성장'은 미흡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어떻게 성장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가 있어야만 동반성장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김상조 교수는 "동반성장은 그동안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살아온 생태계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며 "1∼2년 한다고 금방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올 수 없는 만큼 서두르지 말고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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