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터키 '100년 대치'…국교 정상화 요원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4-24 2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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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학살' 100주년 추모식 vs '갈리폴리 전투' 100주년 행사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세르즈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오른쪽)

아르메니아-터키 '100년 대치'…국교 정상화 요원

'집단학살' 100주년 추모식 vs '갈리폴리 전투' 100주년 행사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이 학살되고 강제이주되기 시작한 지 100년을 맞은 24일(현지시간) 아르메니아와 터키가 각각 국제적 추모행사를 열어 첨예하게 대립했다.

아르메니아는 이날 수도 예레반에서 '집단학살' 100주년 추모행사를 개최한 반면 오스만제국의 후신인 터키는 서부 차낙칼레에서 '갈리폴리 전투' 100주년 행사를 열었다.

국경을 맞댄 아르메니아와 터키는 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5~16년 일어난 대학살 사건을 '집단학살'(Genocide)로 인정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 양보하지 않아 국경 개방 등 국교 정상화는 요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100주년 추모식…프랑스·러시아 대통령 참석

세르즈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예레반에서 열린 집단학살 100주년 추모식에 참석해 추모탑에 헌화했다.

아르메니아 관영 뉴스통신인 아르멘프레스는 사르키샨 대통령이 추모식 연설에서 "대학살 100주기는 국제사회가 이런 범죄들과 싸우는 데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사르키샨 대통령은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 유럽의회,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이 사건을 '집단학살'로 인정한 것을 언급하며 "100년 동안 부정한 어둠을 사라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참석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터키에서 이미 중요한 언급들이 있었지만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다른 언급들이 나오기를 바란다"며 집단학살 인정을 거부하는 터키 정부에 전향적 언급을 촉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사람을 집단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절대 정당화할 수 없다"며 "오늘 우리는 아르메니아 국민과 함께 추모한다"고 말했다.

사르키샨 대통령은 100여 개국 정상들을 초청했으나 다른 국가들은 터키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대표단만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아르메니아인 학살은 1차 대전 때 러시아가 오스만제국을 침공하자 게릴라 활동을 벌였던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군에 가담한 이후 발생했다.

오스만제국의 내무장관 탈라트 파샤가 아르메니아인 강제 이송을 지시한 1915년 4월 24일부터 18~50세 아르메니아 남자들이 강제 징집됐으며,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군사훈련과 공사현장에 동원돼 집단 사살되거나 과중한 노동과 질병, 기아 등으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부녀자와 노약자 등은 메소포타미아 사막으로 추방돼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아르메니아는 이 사건을 '대재앙'이란 뜻의 아르메니아어 '메즈 예게른'이라고 부르며 150만명이 집단학살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터키 정부는 전시에 일어난 불가피한 사건으로 희생자도 30만명 정도이며 아르메니아인들도 무슬림들을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터키 '갈리폴리 전투 100년' 행사…英 왕세자·호주·뉴질랜드 총리 참석

대학살을 '1915년 사건'으로 표현하는 터키 정부는 지난해 처음으로 애도를 표명한 데 이어 올해도 애도했지만 갈리폴리 전투 100주년 행사로 대응하는 등 갈등을 표출했다.

갈리폴리 전투는 1차 대전 당시인 1915년 4월 24일부터 25일까지 터키 서부 차낙칼레의 갈리폴리 항에서 치러졌으며 오스만제국군은 영국과 호주·뉴질랜드연합군(ANZAC) 등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저지했다. 이 전투로 양측에서 13만여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터키는 매년 4월 25일에 갈리폴리 전투 기념식을 열었지만 100주년인 올해는 하루 전부터 행사를 시작했으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100여개국 정상을 초청했다.

초청에 응한 정상급은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토니 애벗 호주 총리, 존 키 뉴질랜드 총리 등 관련국이며 다른 국가는 외교대표단이 참석했다. 호주와 뉴질랜드 전사자의 후손들도 매년 4월 25일이면 대규모로 이곳을 방문해왔다.

터키 이스탄불의 아르메니아정교회 교회에서도 이날 학살을 추모하는 예배가 열렸다.

이 예배에 볼칸 보즈크르 유럽연합(EU) 담당 장관이 터키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으며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면으로 애도를 표명했다.

에드로안 대통령은 "과거에 아르메니아 공동체가 겪었던 슬픈 사건에 거듭 애도를 표하며 진심으로 고통을 나누고 있다"며 "우리는 세계 각지에 있는 오스만 아르메니아인의 후손들에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99주년인 지난해 터키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희생자와 유가족을 애도하는 성명을 내고 집단학살 논란은 정치인이 아닌 역사학자들에 맡기자며 화해를 제안했다.

아르메니아 사르키샨 대통령은 터키와 외교 관계를 수립할 준비가 됐다면서도 먼저 터키 정부가 집단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그리스, 키프로스 등 20여개국은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을 부인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등 집단학살을 인정하고 있으며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집단학살이라고 언급해 독일 정부로서는 처음으로 집단학살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도 집단학살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참혹한 사건'이라고 표현했으며 터키와 아르메니아가 과거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르메니아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대선 후보 당시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은 주장이나 사견, 관점 등이 아니라 방대하게 문서화된 사실"이라며 "대통령으로서 집단학살임을 인정하겠다"고 공약한 것을 올해도 실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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