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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동네타임즈 박윤수 기자] 방금까지도 보이던 풍경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급작스럽게 닥친 사고 이후 눈앞에는 암흑뿐이었다. 법조인의 꿈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사고가 꿈까지 빼앗지는 못했다.
19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시각장애 1급인 김동현(33)씨는 20일 자로 서울고법 재판연구원(로클럭)에 임명됐다. 김씨는 민사 34부에 배치돼 2년간 재판부를 보조하며 실무 경험을 쌓게 된다.
부산과학고등학교,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를 나온 김씨는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이던 2012년 5월 불의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양쪽 시력을 모두 상실했다. 사고에 대해 아직 언급을 꺼릴 정도로 그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눈은 잃었지만 꿈까지 잃은 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특히 국내 첫 시각장애인 판사 최영(35) 판사 등 선배 시각장애 법조인의 얘기를 전해 듣고 의지를 다졌다.
1년을 휴학한 김씨는 학교에 복학해 후배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학업은 전보다 훨씬 어려웠다. 책을 문서파일로 변환해 컴퓨터 낭독 프로그램으로 들어야 해 공부 시간이 전보다 두 배 이상 필요했다. 꼭 봐야 하는 참고서의 파일을 못 구해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김씨를 도와준 건 주위 학생들이었다. 선배와 후배가 자신의 요점 정리 파일을 넘겨줬다. 같은 수업 학우들이 한 과목씩 맡아 필기를 보내주기도 했다. 김씨는 "이들에게 너무나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후배들과 함께 로스쿨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변호사 시험에도 합격해 로클럭에 임용됐다. 로클럭은 2년 기간의 임시직이지만 로스쿨 학생 다수가 선망하는 자리다. 법관으로 임용될 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김씨는 "제가 되고 싶은 것은 최종적으로는 판사"라며 "저 스스로와 같은 장애인이나 다른 사회적 약자를 좀 더 배려하고, 이들에게 공감하는 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종합청사 15층 김씨의 사무실에 보조원과 함께 2인용 청음실, 시각장애인용 낭독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법원 건물에 점자유도블록 등 장애인 편의시설도 확충하거나 보완했다.
김씨 등 로스쿨 출신 66명은 20일 전국 각 법원의 재판연구원으로 첫 출근을 한다. 66명 중 여성이 34명이고 평균 연령은 31세다. 치과의사, 수의사, 노무사도 한 명씩 있다. 장애인은 김씨와 시각장애 3급인 연구원이 한 명이 더 있다고 대법원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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