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자료사진) |
<아베노믹스 진단> 韓전문가들 "日 구조개혁 없으면 반짝효과"
"일부 성과" vs "더 지켜봐야" 의견 팽팽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이지헌 김수현 기자 = 아베노믹스(Abenomics)의 성패에 대해 한국 전문가들은 조심스러운 견해를 보인다.
지난 20년간 일본경제를 괴롭힌 디플레이션(Deflation) 심리를 해소했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에 실질임금 인상과 구조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국내 전문가들은 한국은 가계부채 탓에 아베노믹스 같은 정책을 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일본기업의 수익성 개선에 지속성이 보인다. 작년 4월 소비세율 인상 충격이 예상보다 컸지만 충격을 조금씩 극복하는 모습이다. 기업 수익이 호전되면서 투자도 일부 회복하고 유가 하락에 따른 수입수요 둔화로 무역 적자도 줄었다. 경기 측면에서 무난하게 회복세가 유지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가 될 것 같다.
이는 아베노믹스만의 성과라기보다는 경기순환상 회복 국면에 들어선 영향도 있다. 회복하려던 시점에 아베노믹스가 등장한 것이다. 민주당 정권에서부터 이어온 구조개혁 고민이 10년 정도 지속하다 보니 서서히 효과가 나타난 측면도 있다. 아베노믹스라고 해도 성장 전략 측면에선 과거와 다르지 않다. 단기적 성과가 없어도 꾸준히 추진해온 일관성을 높게 평가할 만하다. 지나치게 디플레 탈출을 강조하다 보니 소비세율을 올리면서 서민 소비가 위축됐다. 임금 인상을 유도하면서 기업 경영에 지나치게 관여한 측면도 있다. 공공투자를 확대했지만 인력이 부족해 공사 소화도 어려운 상태다. 규제 또한 실질적으로는 크게 완화된 게 없다. 더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금융완화다. 환율을 안정시키고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려 디플레 심리를 억제했다는 점, 꾸준한 성장전략을 유지했다는 점, 금융완화로 자산시장이 호조를 보였고 실물경제가 뒤따라 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아베노믹스가 근본적으로 경기를 활성화했느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지금은 돈을 푼 게 겉으로 나타난 효과일 뿐이다. 재정 건전화 계획을 추진하지 않는 한 단기적으로 반짝할 수 있어도 언젠가는 위기에 봉착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도 일본 경제 회복 가능성은 좋게 보지 않는다. 2013년 5월 버냉키가 양적완화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일본도 금리 인상 압박을 받아 주가가 폭락한 적이 있었다. 일본은 지금 금리만 한번 올라가면 망하는 경제다. 국채를 없애든 세금을 더 많이 걷어서 갚지 않는 이상은 위험하다.
아베노믹스가 다시 살아나려면 실질 임금이 올라가야 한다. 일본은 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실질임금이 1997년 이후 계속 내려가고 있어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위기에 봉착하면 한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 내수가 또 한 번 크게 줄고 엔화가 훨씬 절하되면서 해외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려는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나라 자본시장도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은 일본과 같은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써서는 안 된다. 일본의 약점이 국채라면 우리나라는 가계부채에 취약하다. 금리가 낮아지면 가계부채 문제는 더 커진다. 금리를 내리려면 가계 부채를 작심하고 줄이면서 내려야 한다.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에서 돈을 풀 수 있게 해야 한다. 기업이 돈을 쌓아두다 보니 자금이 가계로 흘러들지 않아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고 투자가 안 된다.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으면서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조금씩 성공에 근접해 간다고 본다. 세 번째 화살이라는 성장전략이 나름대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법인세 추가 인하 의지도 분명히 보인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 인상 기미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중장기 관점에서 일본 경제 회복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올해는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를 앞뒀는데 일본 경제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우려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성장세가 약화하면 일본 경제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일본 경제가 좋아지는 게 한국 경제에도 좋다. 일본 경제가 더 위험에 빠진다면 한국에도 큰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성공한다면 한국이 구조개혁 롤모델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도 일본과 같이 공격적인 통화정책에 나서야 하는가에 대해선 조심스럽다. 돈을 풀어제끼면 물가가 안정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한국도 수요 측면의 부양 정책과 공급 측면에서의 구조개혁 정책을 합한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 돈을 풀되,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5∼10년 정도 긴 호흡을 갖고 매년 새로운 구조개혁 과제를 발굴해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것만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경제 회복을 꾸준하게 이끌고 나갈 확고한 정치적 지지기반이 필수적이다.
◇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아직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예단하기는 이르다. 금융정책, 재정정책, 구조개혁 등 세 개의 화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세 번째 화살인데, 아직 구조개혁의 화살은 쏘지도 못했다. 노조의 저항이 있어서 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시중에 돈을 많이 풀고, 엔저를 유지하면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는 있다. 이에 앞서 쏜 두 개의 화살은 부작용이 상당하다. 금융과 재정정책만으로 일본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기업 활동의 내용이 좋아야지 환율 덕택에 반짝 이익을 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기업들이 투자 안 하는 게 금리 때문은 아니다. 금리를 더 낮추면 가계부채가 증가해 금융위기로까지 번질 수 있다. 우리의 경제규모는 일본처럼 크지 않다.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해 일본처럼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문제는 왜곡된 노동시장이다. 일단 소비가 얼어붙었다. 140만~150만원의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이 700만 명이 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소비경기가 살아날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왜곡된 노동시장을 바로잡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아베노믹스는 전반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일본 기업이 수출할 수 있도록 엔화 약세 정책을 썼고, 그 덕분에 영업이익이 늘었다. 일본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니 임금이 늘었고, 침체한 소비심리도 회복됐다. 지난 20년간 일본경제를 괴롭힌 디플레 심리를 해소했다는 점에서 아베노믹스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일본의 성과가 우리에게는 악재가 될 공산이 크다. 석유·전자·반도체·조선·철강 등의 수출 분야에서 일본과 경합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엔저에 바탕을 둔 일본 수출품의 경쟁력은 아베노믹스 이전보다 높다. 물론 일본 경기가 살아나면서 일본에 수출하는 우리 기업의 실적도 좋아질 가능성이 있지만 원화 강세여서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도 아베노믹스처럼 고환율정책을 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을 잘 설득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국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전향적인 정책혼합이 있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규제개혁을 하고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 곽영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아베노믹스를 현 시점에서 평가하면 50점 정도를 줄 수 있다. 절반의 성공이다. 2년여 전 아베노믹스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대부분이 실패를 예상했다. 지금은 실패를 단정 짓는 사람은 없다. 닛케이 지수 상승은 세계적으로 풍부한 유동성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일본 기업의 실적이 개선된데 기인했다. 아베노믹스가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는 얘기다.
장기적으로는 고령화에 따른 일본 경제의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구조개혁은 쉽지 않고 성과도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아베노믹스의 최종적인 성공은 장담하기 어렵다. 아베노믹스는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의 마지막 시도다. 잃어버린 20년은 일본의 정책대응 실패에 기인한 바가 크다.
한국이 아베노믹스와 같은 양적완화책을 쓸 단계는 아니다. 아베노믹스도 지속성이 의심스러운데 이를 한국이 따라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통화정책 같은 단기 처방보다 경제 체력을 키울 수 있는 '보약'이 필요하다. 제조업은 이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계에 도달했다. 결국은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 정책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아직은 아베노믹스의 성패에 대해 평가할 단계가 아니다. 이제 중간 단계에 와 있다. 돈을 풀었으니 주식시장이 살아나는 것은 당연하다. 유동성 장세로 보인다.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효과(자산가치 증가로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날지는 지켜봐야 한다.
일단 일본의 거시경제 지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2차 소비세 인상을 연기한 것은 잘 한 결정이라 본다. 국채시장도 안정화됐다. 실물경제로 가면 회복이 미약한 부분이 많다. 고용이 늘었지만 비정규직 위주다. 물가상승률이 소득증가율보다 높아 실질임금을 낮추고 있다. 체감경기는 더 어려워졌을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재정·통화정책이 단기 부양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에서는 큰 리스크가 없지만 실물경제가 관건이다. 엔저로 기업 수익성이 좋아진 만큼 그것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질지가 관전 포인트다. 일본 업체들이 공격 경영으로 전환하면 우리 기업들은 더 어렵게 될 것이다. 자동차와 정보기술(IT) 분야에 타격이 있지만 어려워지는 산업 분야가 더 확대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일본처럼 공격적인 통화정책에 나설 수는 없다. 투자처도 없는데 무턱대고 통화량을 늘리면 과거 중남미 국가와 같은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가계부채도 직격탄을 입을 것이다. 결국은 경제심리를 풀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특히 기업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 일관적인 정책추진과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