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비판자를 힌두 영웅으로 둔갑시키다니…"
힌두민족주의 성향 인도 집권당 욕심 논란 일으켜
(서울=연합뉴스) 정일용 기자 = 힌두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인도국민당(BJP) 정부가 인도 건국의 아버지 중 한명인 '불가촉천민' 출신 지도자 빔 라오 암베드카의 업적을 가로채려 하고 있다고 인도의 유명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주장했다.
로이는 인도 헌법을 기초한, 3억명에 이르는 불가촉천민 '달리트'들의 우상으로 존경받는 암베드카를 힌두 영웅으로 묘사하려는 사악한 시도의 배후에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이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이는 1997년 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발표했으며 다음해인 1998년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영국의 부커상을 수상했다.
암베드카는 힌두교를 비인간적인 종교로 여겼고 이 때문에 마하트마 간디를 '사기꾼'으로 비난한 적도 있었다. 간디가 이끄는 인도국민의회(NIC)가 겉으로는 달리트를 지원하는 척하면서 기실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카스트 제도를 강력히 옹호했기 때문이었다.
달리트는 카스트 제도의 최하층 천민이다. 그들은 상위 계층과는 결혼도 못하고 같은 우물에서 물도 마시지 못하며 음식도 함께 먹지 못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그들이 '오염시킨다'며 그림자를 드리우거나 발자국을 남기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암베드카의 업적을 놓고 이렇듯 쟁탈전을 벌이는 것은 그가 달리트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다는 것을 반영한다.
암베드카의 124주년 생일인 14일 구글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색 저고리에 흰색 바지, 붉은 색 넥타이, 굵은 테 안경을 착용한 모습을 게시해 놓고 그를 기리기도 했다.
그는 달리트 사이에서는 '바바사헤브'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가난한 불가촉천민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에서도 매일처럼 선생님과 학생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지만 인도 독립헌법을 기초하는 등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는 교실에서도 의자가 아니라 바닥에 깔아놓은 자루 위에 앉아야 했다. 그는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학교 수돗물도 마시지 못했다.
달리트는 지금도 잔혹한 폭력, 성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라치면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등 노예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암베드카는 인도 카스트 제도의 종교적 핵심인 힌두교를 버리지 않으면 인도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간디와 충돌하곤 했다.
간디는 달리트를 좀더 존대해 줄 것을 사람들에게 요구했지만 종종 그들을 박해하는 쪽에 기울었다. 폭력을 동원해 달리트 어린이의 취학 금지 운동을 펼친 상위 계층을 지지한 적도 있었다.
로이는 인도국민당이 암베드카를 자신들의 힌두통치체제를 위해 끌어들이는 행위는 그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로이는 "그들이 암베드카를 칭송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암베드카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 힌두교의 상징으로 조작하려는 짓"이라며 "말문이 막힌다"고 비난했다.
최근 힌두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성당 방화나 수녀 성�행 사건은 모두 암베드카를 따라 다른 종교로 개종한 달리트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암베드카는 불교로 개종했었다.
로이는 "암베드카를 왜곡시켜 그가 반대해 왔던 것을 오히려 옹호하는 데 이용하곤 한다. 달리트의 빈곤 문제 등도 정반대로 악용된다"고 한탄했다.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