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모프 당선…러·미국, 중앙아시아서 힘겨루기 계속
우즈베키스탄 친미 정권 연장, '전략적 요충지' 판세 달려
(알마티=연합뉴스) 김현태 특파원 = 이슬람 카리모프 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집권이 연장되며 옛소련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와 미국의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즈베키스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30일 카리모프 대통령이 전날 치러진 대선에서 90%의 득표율로 당선됐다고 밝혔다.
카리모프는 27년째 우즈베키스탄에서 장기 집권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의 압승이 미리 점쳐져 새삼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는 러시아와 미국은 그의 재집권으로 셈이 복잡해졌다.
옛소련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는 러시아의 앞마당이다.
미국 또한 중동지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곳에서의 주도권이 간절하다.
최근 러시아는 이 지역 주도권 장악에서 미국보다 앞서 나갔다.
러시아는 수년간 키르기스스탄을 설득한 끝에 지난해 3월 키르기스스탄에 있던 마나스 미군 기지의 폐쇄를 이끌어 냈다. 또 우즈베키스탄에는 같은 해 12월 대 러시아 채무를 대규모 탕감해주며 마음을 흔들었다. 카자흐스탄과는 올해 역내 경제공동체를 출범했고 타지키스탄에는 대규모 군사지원을 약속했다.
이렇듯 주도권 싸움은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로도 침공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이 지역에 퍼지면서 러시아는 발목을 잡혔다.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로부터 채무를 탕감 받은 지 석 달 만에 미국으로 마음을 돌렸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다시는 옛날처럼 더 강한 나라와 통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즈베키스탄이 확고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만큼 누구의 얘기도 들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다. 러시아는 현재 역내 경제권 통합을 꿈꾸지만, 서방은 이를 '옛소련 부활'의 사전단계로 보고 있다.
카리모프는 앞서 "역내 경제권 통합은 정치적 독립이 보장될 수 없다"며 러시아의 혹시 모를 야심을 경계하기도 했다.
러시아를 상대로 카리모프가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은 미국의 지원이 있어서다.
미국은 올해 1월 우즈베키스탄에 미군의 지뢰방호차량(MRAP) 308대를 지원키로 했다. 아울러 양국은 안디잔 사태 직후 폐쇄된 우즈베키스탄 내 미군 기지의 재건도 논의 중이다.
미국은 또 유럽과의 천연가스 직거래를 추진하는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유럽의 가스 직거래가 성사될 때 입게 될 자국 손실을 우려해 이를 강하게 반대하지만, 가스 부국 투르크메니스탄은 자국 경제발전을 위해 직거래를 강행할 방침이다. 이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보다 미국의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아직은 중앙아시아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미국과 손잡은 카리모프의 집권연장으로 미국이 섣불리 이 지역에서 발을 빼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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