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계획 노선 '마을 관통'…각종 문화유산 훼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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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평택에서 전북 익산을 잇는 '제2서해안고속도로' 건설이 추진중인 가운데 지난달 25일 충남 예산 대흥면 '예산 대흥슬로시티' 인근에 이곳을 지나는 고속도로 노선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지역 이슈> "1천300년된 마을을 두 동강 낼수 없습니다"
예산 슬로시티 주민들, 제2서해안고속도로 우회 건설 요구
고속도로 계획 노선 '마을 관통'…각종 문화유산 훼손 우려
(예산=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 '고속도로' 노선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9년 9월 국제슬로시티연맹이 국내 6번째로 지정한 충남 '예산 대흥슬로시티'.
느린 삶과 그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현대인의 안식처 역할을 해 온 이곳이 최근 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추진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경기 평택과 충남 부여, 전북 익산 139.2㎞를 잇는 제2서해안고속도로가 이곳을 관통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 제2서해안고속도로 사업은
제2서해안고속도로는 평택∼부여∼익산 간 139.2㎞를 잇는 2조6천억원 규모 사업이다.
서해안선 서해대교와 경부선 천안 이북의 상습 정체를 해결할 필요성 때문에 추진되고 있다.
민간사업자가 도로를 건설하고 나서 소유권은 국가에 넘기고 30년 이상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수익을 가지는 이른바 BTO 방식이다.
포스코건설이 지난해 2월 사업 제안을 했으며 그해 4월부터 민자적격성 조사를 진행해 포스코건설이 민간투자 방식으로 정부 적격성 심사를 통과했다.
포스코건설은 이달 말까지 사업제안서를 제출하게 된다.
2017년 초 실시계획 승인을 거쳐 2022년 1단계로 평택∼부여 구간이 개통될 것으로 전망된다.
◇ 예산군 구간에 '슬로시티' 비롯한 문화유산 밀집
문제는 예산을 지나는 구간에 슬로시티를 비롯해 문화유산이 밀집돼 있다는 것이다.
신암면 구간에 추사 김정희 선생 유적지가 있고, 대흥면 슬로시티 인근 예당호 구간에는 백제부흥군 최후 항전지인 임존성, 조선 초기 관아건축물인 대흥동헌, 광시 황새마을, 봉수산 휴양림, '의좋은 형제' 실존인물인 이성만 형제 우애비 등 보존이 필요한 문화유산이 집중돼 있다.
구간 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 17건을 비롯해 도지정문화재 38건 등 총 88건의 문화재가 있어 문화관광자원으로서 보존가치가 높은 청정지역이라는 것이 예산군의 설명이다.
특히 2008년 7월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으로 선정된 '예당호' 구간에는 지난 6월 대한민국 최초로 멸종위기 천연기념물인 황새 60마리를 야생에 방사해 자연복귀를 추진하는 황새마을이 인접해 있다.
건설업체가 제안한 노선대로 추진된다면 50여년 전 예당호 조성 과정에서 땅과 집 등을 내놓고 이주했던 주민들이 다시 한번 터전을 내놓고 거주지를 옮겨야 한다. 포스코건설 측이 제시한 노선이 마을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 "유적·환경 훼손 불보듯"…우회 노선 촉구
포스코건설이 제시한 노선에 따르면 대흥향교 100m 앞을 통과한 고속도로가 대흥동헌 뒤편을 지나 광시면으로 곧바로 향하게 된다. 주민 반발에 따라 내놓은 수정안 역시 대흥향교 후방 100m를 지나 마을을 관통해 광시면을 향할 뿐 주민 입장에서는 처음 안과 다를 바 없다.
주민들은 아예 백제부흥군의 원혼이 깃든 임존성이 있는 봉수산 뒤편으로 우회해 주길 바라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백제 부흥을 위해 투쟁한 선조의 정기를 이어받아 '의좋은 형제'의 아름다운 형제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마을을 보존하고 발전시켜 왔다"며 "그동안 골프장 건설, 대학교 조성 등 예당저수지를 기반으로 한 수익사업을 곳곳에서 제시해 왔지만 우리는 그런 유혹을 전부 거절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백제부흥군 최후 항전지인 임존성과 예산 대흥 슬로시티, 봉수산 자연휴양림 등을 관통하게 돼 우리가 가꿔 온 역사 유적과 자연환경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고속도로 건설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봉수산 뒤편으로 노선을 조정해 마을을 우회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중섭 출향민 대표는 "20∼30년 전만 해도 대흥향교 인근 밭에서 백제시대 금동불상이 발견되는 등 아직 문화재 발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동네인데 이곳을 갈아엎는다면 영영 문화재를 발굴할 기회조차 사라지게 된다"며 "천혜의 경관은 물론 2.7㎞ 떨어져 있는 황새마을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효신 예산대흥슬로시티협의회 사무국장은 "경제 논리에 휘말려 1천300년 된 마을을 두 동강 내버릴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며 "주민들 스스로 아름다운 마을로 꾸며가면서 국내 최고의 슬로시티로 자리 잡은 우리 마을을 절대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아예 예당호 건너편으로 가는 노선을 제안하고 나섰다.
오가면 신장리에서 신양면 서계양리를 거쳐 청양읍 백천리로 향하는 노선이다.
건설비도 줄일 수 있고 문화재·자연환경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주민들은 보고 있다. 신양면과 청양읍 구간 사이에 스마트휴게소를 조성해도 아름다운 예당호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산군도 주민들의 의견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군은 최근 "문화재와 대흥면 슬로시티, 산림, 농경지 등 환경 피해가 되지 않도록 노선을 선정해 달라"며 "특히 대흥면 주민의 집단 민원이 해결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 포스코건설 "공사비 수백억원 증가" 난색
포스코 측은 마을을 우회하는 방안은 수백억원이 더 소요되는 만큼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업체의 한 관계자는 "슬로시티 주민들의 요구대로 고속도로를 우회하면 700억∼800억원의 추가 공사비가 든다"며 "아예 홍성 쪽으로 노선을 돌리겠다는 안에 대해서는 반대하면서 봉수산 뒤로 돌아가라는 주장만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산군 등으로부터 노선에 대한 의견을 받아 절충안을 검토할 계획이지만 절충안대로 공사해도 3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본다"며 "민원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는 5월 사업시행자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계획인 정부는 시행자와 함께 최종 노선을 협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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