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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찍은 현앨리스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현앨리스의 동생 현피터, 현앨리스, 현앨리스의 아버지 현순. (돌베개 제공) |
"현앨리스, 한국판 마타하리 아닌 비극적 경계인이었다"
정병준 교수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한국판 마타하리'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에게나 좀 알려진 현앨리스(1903~1956?)라는 여성이 있었다. 한국 이름은 현미옥. 독립운동가 현순(1880~1986) 목사의 맏딸로, 하와이 출생 제1호 한국인이자 재미 한인 진보운동가였다는 것이 그에 관한 기초사실이다.
2002년에 이르러서야 현앨리스는 언론보도를 통해 '한국판 마타하리'로 묘사되며 일반에도 알려진다. 그가 일제 강점기 중국 상하이에서 박헌영과 여운형으로부터 구애를 받았고, 6·25 당시 중위 신분으로 맥아더 극동사령관 비서로 근무하다 박헌영과 월북한 뒤 미국 간첩이라는 혐의를 받고 북한에서 총살당했다는 것이다.
마타하리는 1차대전 당시 미모를 무기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활동한 여성 이중간첩이다. 그에 비교되는 현앨리스는 해방 후 남한에 들어왔다가 북한의 첩자로 몰려 추방됐고, 북한에서는 당시 김일성의 정적 박헌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박헌영의 '첫 애인'이자 그를 포섭하기 위한 미국 정보기관의 첩자라는 혐의를 받았다.
이런 역사적 맥락 탓에 현앨리스는 북한 내 권력투쟁의 결과물로 여겨지는 '박헌영 간첩사건'의 조연이자 '여간첩' '마타하리' 등 선정적 이미지로 소비됐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는 물론 해방공간의 남과 북으로부터 모두 배제된 그의 기구한 삶을 단순히 전쟁을 배경으로 한 첩보극 등장인물 정도로 볼 수 있을까.
현대사 연구자인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도 처음에는 현앨리스를 '미국의 스파이' '박헌영의 애인' 등으로 막연히 상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체코 프라하에서 찾은 수많은 문서, 관련 증언 등을 통해 파악한 현앨리스는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이었다고 정 교수는 주장한다.
그가 현앨리스에 대한 오랜 추적과 연구의 결실로 내놓은 책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돌베개)는 사진 한 장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에서 유독 강조되는 이 사진은 박헌영의 아내 주세죽의 유품에서 발견됐고, 북한 정권이 연인 관계로 규정한 박헌영과 현앨리스의 관계가 응축돼 있다고 한다.
이 사진은 이전까지 알려진 바로는 1929년 모스크바에서 촬영됐다. 당시 국제레닌학교에 다니던 박헌영이 동아시아 혁명가들과 찍은 사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요 등장인물들의 다른 사진과 여러 자료를 분석한 정 교수는 사진이 1929년 모스크바가 아닌 1921년 겨울 상하이의 한국 유학생들을 찍은 것으로 결론 내린다.
3·1운동의 열기가 남아있던 1921년, 뒷날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핵심이 된 박헌영이 현앨리스와 같은 사진에 등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일단 정 교수는 두 사람이 '첫 애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상하이에서 서로 아는 사이였고, 사랑과 결혼은 각기 다른 이와 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을 한 공간에 뒀고 결국 비극으로 몰아넣은 역사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 역사의 퍼즐을 맞출 결정적 단초로 저자는 현앨리스의 삶을 면밀히 추적해 나간다. 1921년의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 여정은 현앨리스 개인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부터 손자까지 4세대에 걸친 현씨 집안 역사, 동시에 한국 근대사와 재미한인사, 한국 독립운동사, 북한 현대사, 냉전사를 아우르면서 꽤 큰 그림을 그린다.
그 여정에서 발견되는 현앨리스는 3·1운동과 사회주의·공산주의·러시아 혁명이 성장시킨 진보주의자이자 혁명가였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기독교·민족주의를 존재론적 기반으로 삼았고, 한국으로 들어와 1919년 3·1운동의 에너지를 마주한 뒤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어 하와이로 다시 옮겨간 뒤 노동조합 운동과 미국 공산당 활동에 참여하다 해방 이후에는 남한 혁명운동에 동참했다. 저자는 "정확히 말해 그녀가 매료된 것은 사회주의 이념이라기보다는 민족주의와 결합한 사회주의적 이상주의 혹은 이상주의자들이 뿜어내던 열정과 시대정신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인이나 미국인이 되길 거부하고 해방 한국의 진정한 한국인을 꿈꾼" 현앨리스의 삶은 결국 '디아스포라'의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는 1945년 말 미군정의 민간통신검열단 소속으로 한국에 들어왔으나 북한 첩자로 몰려 추방됐다. 그의 눈에 남한은 과거 혁명동지였던 박헌영과 여운형이 탄압받는 '반동적' 세계였다.
이후 다시 도미해 진보운동에 관여한 현앨리스는 자신이 '이념과 사상의 모국'으로 꿈꾼 평양으로 들어간다. 안타깝게도 해방 후 사회주의 북한은 그가 생각한 공간이 아니었다. '미국 물'을 먹은 현앨리스를 이질적이고 위험한 인물로 간주한 북한은 그를 통해 박헌영까지 미국 스파이로 규정하고 제거하기에 이른다.
평생 방랑자로 산 현앨리스는 결국 현실세계에서는 자신이 꿈꾼 '이상적 한국'을 찾을 수 없었다. 저자는 그에게 씌워진 다중적 정체성을 이렇게 요약한다.
"일본의 입장에서 그녀는 '위험한 좌익 혁명분자'였고, 미군정의 눈에는 좌익과 소통하는 '악마적 존재'로 비쳤으며, 북한에서는 '미 제국주의의 고용간첩'으로 낙인찍혔다. 한국 근현대사의 경로는 그녀의 한 몸에 다중적이고 역설적인 정체성을 강요했다. 현앨리스를 투과한 근현대의 빛은 공존 불가능한 극단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394쪽)
484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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