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은 과연 자본주의만의 전유물이었나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3-12 0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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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나 보크만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번역 출간

'자유시장'은 과연 자본주의만의 전유물이었나

조하나 보크만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너는 우리 편이냐, 아니면 적의 편이냐'라는 이분법적 질문을 경제학자들에게 한다면 이렇게 될 듯싶다. '당신은 국가의 편인가, 아니면 시장의 편인가.'

시장경제와 국가 개입을 대립항으로 보는 시각은 경제체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이분법이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것이 '자본주의는 자유시장을 신봉한다' '사회주의는 반(反)시장적이다'라는 선입견이다. 20세기 끝무렵 냉전체제가 붕괴하고, '시장 근본주의'로도 불리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이런 이분법은 더욱 강력해진 양상이다.

과연 '자유시장경제'라는 체제는 자본주의만의 전유물일까. 사회주의권 경제학자들은 모두 반시장적이고 국가가 주도하는 통제경제만을 주장했을까. 조하나 보크만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최근 번역 출간된 저서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글항아리)에서 '국가 대 시장'이라는 경제학적 이분법의 논리를 허문다.

'사회주의는 반시장적 국가주의 이념'이라는 주장을 많은 이들이 '사실'로 인식하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가 살펴본 바로는 냉전이 끝나고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서 확고한 패권을 차지하기 전까지는 사회주의권인 동유럽에서조차 자유시장경제 실현을 위한 경제학적 논의가 활발했다.

1988년 가을부터 1989년 봄까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저자는 시장경제에 무조건 적대적일 것만 같았던 동구권 국가에서 자유시장경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을 만나 어리둥절했던 경험을 이렇게 소개한다.

"우리를 가르쳤던 카를마르크스 경제대학의 교수들은 분명 사회주의자들이었을 터인데도 말하는 것을 보면 레이건식 미국 공화당 당원 같았다."

그때 경험은 저자에게 '동유럽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과연 무엇이었나'라는 묵직한 질문거리를 남긴다. 그 답을 찾고자 동유럽의 여러 경제학자를 만나고 현지 문서고에서 다양한 문헌을 원문으로 직접 검토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초점은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세계에서 주류경제학이 됐고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로까지 여겨지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역사에 맞춰진다.

저자에 따르면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서방에서도 매카시즘이 종식되면서 냉전의 긴장이 한결 완화됐고, 그 결과 동서 간 초국가적 대화가 단계적으로 시작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동구와 서방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도 서로 교류하면서 각자의 진영에 상관없이 자유시장경제 실현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다.

저자는 체제 대립을 넘어 이같은 학문적 논의가 가능했던 이유로 신고전파 경제학에 내재한 사회주의적 요소를 제시한다.

흔히 '신고전파 경제학-시장 지지-자본주의' 대 '마르크스 레닌주의 경제학-국가 지지-사회주의'라는 이분법으로 경제체제를 설명하지만,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다루는 경쟁적 시장경제는 수학적으로는 중앙계획경제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대 주류경제학의 방법론 중 하나인 '전능한 사회 계획가'를 한 예로 든다. 가상의 인물인 이 계획가는 모든 비용과 모든 이의 선호에 관한 정보를 완벽하게 보유하고 있어 확실성을 갖고 사회 제도를 선택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이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 시행의 결과를 예상할 때 쓰는 이 방법론은 말하자면 가상의 국가사회주의 모델인 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은 한때 동유럽에서 시장경제와 탈(脫)중앙집중화를 중요 요소로 삼는 혁신적 사회주의 모델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20세기 중반 세계 경제학자들로부터 '현존하는 가장 우월한 경제체제'로 불린 유고슬라비아의 노동자 자주관리 사회주의가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도구'쯤으로 여겨지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본디 모습이 자본주의-사회주의, 국가-시장이라는 단순 이분법을 뛰어넘어 유고슬라비아 모델처럼 시장경제의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했다는 저자의 분석은 흥미롭다.

20세기 말 동구 붕괴 이후 정치적 패권주의와 엘리트 집단의 도구로 '급진적 시장주의'를 내세운 신자유주의가 득세한다. 그러나 이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추구했던 자유시장경제의 이상을 권위주의적으로 좁게 이해한 결과물일 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1989년 동구권 붕괴라는 정치적 상황을 이용하고자 정치 엘리트들이 만든 '사상적 패키지'였다면서 "진실을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는 수십년에 걸친 급진적인 민주적 사회주의적 실험들의 성과가 최소한 잠재된 모습으로나마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경제학자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번역했다.

588쪽. 2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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