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정권교체 혁명1년> ②우크라-러시아-서방 대타협 절실
우크라 친서방 노선이 기폭제…러시아-서방 간 '제2냉전'으로 확산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 혁명은 친(親)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前)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협상을 중단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2013년 11월 21일. 야누코비치 정권이 EU와의 '협력협정' 체결 준비를 중단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EU와의 통상에서 관세나 다른 규제 없이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Zone) 창설을 골자로 한 협력협정은 EU 가입을 위한 전단계 수순이었다.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정부의 보류 결정에 협력협정 체결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던 친서방 야권은 크게 반발했다. 옛 소련권에서 이탈해 유럽화를 지향한다는 국민적 합의를 저버린 반역행위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이후 그동안 쌓였던 부패한 야누코비치 정권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야권 시위가 불길처럼 번졌고 100명 이상이 숨지는 참극 끝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기존 야권 세력이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 우크라 동-서 갈등이 배경
야누코비치 정권의 유럽화 정책 중단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사태의 바탕에는 오랜 역사에 걸쳐 형성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과 중서부 지역 간 갈등과 반목이 자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1917년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소련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소비에트연방(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으로서 영토·문화적으로 단일 민족국가의 기틀을 잡고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완전한 독립국으로 탄생했다.
그 이전까진 크게 보면 동남부 지역과 중서부 지역이 각각 러시아와 폴란드·유럽국가들의 지배를 받으며 민족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분열돼 있었다.
17세기부터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온 동남부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친러시아 성향이 강하다. 반면 중서부 지역은 16세기 말부터 수백년 동안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향권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유럽 지향적이다. 언어도 주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한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각각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관할 하에 있던 두 지역이 이미 동족에게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피를 흘렸다.
독립국이 된 이후에도 불씨로 남아있던 뿌리 깊은 동남부와 중서부 지역 간 대립과 갈등이 국가 발전 노선 선택 과정을 둘러싸고 폭발한 것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시작이었다.
중서부 지역을 지지 기반으로 한 정치 세력은 우크라이나를 유럽의 일부로 보면서 유럽화를 통한 국가 발전을 원했고, 동남부 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러시아와의 밀접한 정치·경제 협력 속에서 우크라이나의 발전을 도모하려 했다.
동부 도네츠크주 주지사 출신으로 친러시아 성향이 강했던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국민들 사이에서 확산한 유럽화 요구를 외면하지 못하고 EU와의 협력협정을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도 유지하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다 결국 친서방 세력에 쫓겨나고 말았다.
◇ 러시아-서방 간 '제2냉전'으로 확산
뒤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크림 병합,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 확산,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 간 대규모 교전 등으로 확산하며 숨 가쁘게 전개됐다.
지난해 5월 말 조기대선을 통해 집권한 재벌 출신의 친서방 성향 정치인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이 중앙 권력의 대폭적 지방 이전 등을 약속하며 분리주의 세력 포용에 나섰지만 허사였다.
이후 포로셴코 대통령이 분리주의 반군 진압을 위한 대테러작전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은 사실상 내전 상태로 빠져들었다.
여기에 러시아가 반군을, 서방은 우크라이나 정부를 지원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제2의 냉전'으로 불리는 국제 분쟁으로 번졌다.
그 와중에 7월엔 우크라이나 동부 교전 지역에서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미사일 공격을 받고 격추돼 298명 탑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는 참사까지 터졌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반군과 러시아는 서로 여객기 피격 사건의 책임을 상대방에 떠넘기며 비난전의 수위를 높였다.
미국과 EU는 여객기 참사를 계기로 크림 병합 이후 단행했던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더해 금융·방위산업·에너지 분야 등 러시아의 핵심 경제 분야를 겨냥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이에 러시아는 대러 제재에 동참한 EU와 미국, 호주, 등의 농산물과 식품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제재로 맞대응하며 '경제 전쟁'에까지 돌입했다.
이후 서방의 거듭된 제재 수위 강화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반군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 간 교전도 러시아가 반군에 무기와 병력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휴전과 교전 재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 우크라-러시아-서방 대타협 절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유럽화 노선과 이를 반대하는 러시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EU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포기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는 이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세력을 중앙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렛대로 사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선 러시아-우크라이나-서방 간의 대타협이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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