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안전성 담보가 우선" vs 상수도본부 "위해성 너무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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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장 주민들이 기장군청 앞에서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지역 이슈> '삼중수소'에 발목 잡힌 부산 해수담수화 수돗물
상수도본부 작년 12월 공급하려다가 주민 반발에 무기한 연기
주민 "안전성 담보가 우선" vs 상수도본부 "위해성 너무 과장"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정부와 부산시가 물 관련 산업의 해외시장을 선점하려고 야심차게 추진한 부산 기장군의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 사업이 '삼중수소'란 덫에 걸려 휘청거리고 있다.
이 사업을 추진한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애초 지난해 12월부터 담수화 수돗물 공급을 시작하려 했으나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할 기장군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무기 연기했다.
주민들은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 검출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이상 물을 마실 수 없다"고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상수도사업본부는 오는 4월 말이나 5월에 다시 담수화 수돗물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과 환경단체는 물로 기장군도 삼중수소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물 공급을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삼중수소' 문제 왜 불거졌나…안이한 대처가 불안감 키워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있는 해수담수화 시설은 물 산업의 해외시장을 선점하고자 이 분야의 국산화 연구개발(R&D) 사업으로 진행됐다.
2009년에 국비 823억원, 시비 424억원, 민자 706억원 등 모두 1천954억원을 들여 착공하고서 2014년 하반기에 준공했다.
기존의 증발식이 아니라 역삼투압 방식의 담수화 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또 특허기술을 접목한 최신의 폭기시설(DABF)과 2중의 역삼투압(SWRO) 기술 등을 집약한 세계 최고 수준의 담수화 시설이라고 부산시는 자랑하고 있다.
부산시는 이 시설에서 바닷물을 끌어올려 염분을 제거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정수한 뒤 각종 미네랄 등을 첨가하는 방법으로 하루 4만5천t의 수돗물을 생산, 지난해 12월부터 기장군 주민에게 공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해 11월 환경단체인 환경과 자치연구소에서 고리 원자력발전소 주변 해조류에서 방사성 물질인 요오드와 함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고 발표하며 제동이 걸렸다.
상수도사업본부는 같은 달 26일 정수과정을 거친 물을 채수, 방사능을 조사한 결과 세슘(Cs)-134, 세슘(Cs)-137, 요오드(I)-131이 모두 검출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삼중수소는 현재 측정 장비가 없어 검출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상수도사업본부가 삼중수소 문제를 안이하게 여겨 어설프게 낸 반박자료는 오히려 담수화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업본부는 삼중수소의 존재도 모르다가 환경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세슘, 요오드에 비해 위해성이 1천분의 1 정도로 낮고 263종의 부산시 수돗물 감시항목에도 없는 물질"이라며 "바닷물에 미량 포함돼 있어도 해수 담수화 시설에서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해수담수화 시설의 역삼투압 방식이 삼중수소를 걸러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주민들 사이에 방사능 불안감이 확산했다.
◇ 주민 "안전성 확인 안 되면 공급 반대" vs 사업본부 "위해성 너무 과장"
주민과 환경단체들은 우선 고리원전 배수구와 해수담수화 시설 취수구가 너무 가깝다는 점부터 걱정하고 있다.
담수화 수돗물 생산 시설의 취수구는 고리원전으로부터 직선거리로 11km 떨어져 있다.
환경단체들은 원전에서 이처럼 가까운 곳에 해수 담수화 시설을 설치한 자체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08년 6월 입지선정 예비제안서에서 제1후보지로 기장읍 대변리 해안, 제2후보지로 기장군 일광면 학리, 제3후보지로 기장군 일광면 칠암리, 제4후보지로 영도구 동삼동을 꼽았다.
그해 11월 토지가격, 주변 민원 등을 고려해 지금의 기장읍 대변리 해안이 최종 입지로 선정됐다.
김좌관 부산가톨릭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16일 "해류의 흐름은 시시때때로 바뀌고 돌발적인 오염수 방류 등이 일어날 수 있는데 원전 코앞에 담수화 시설을 만든 것은 담수화 시설의 연구·개발 사업에만 치중한 나머지 주민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에 더해 담수화 시설이 삼중수소를 걸러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주민 불안감은 증폭됐다.
삼중수소는 베타선을 방출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다. 중수 중의 중수소(H-2)가 중성자와 결합해 삼중수소(H-3, Tritium)를 생성한다.
의학계에서는 삼중수소에 오염된 식수, 음식 등에 장기간 노출되면 유전자변형을 일으키거나 갑상샘암 등 각종 암 발병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전 방사능 관련 권위자인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는 "삼중수소는 입자가 매우 작고 가벼워 역삼투압 정수과정에서 필터링이 되지 않는다"며 "매일 밥 해먹고 국 끓여 먹는 식수에는 조금이라도 방사성물질이 들어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 앞에 담수화 시설을 만든 것 자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주민의 건강과 후손을 위한다면 폐쇄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민정 해수담수화반대주민대책위 대표는 "부산의 상수도 물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주민이 원하지 않는데도 해수 담수화 수돗물을 공급하겠다는 것은 기장군민을 실험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는 한 절대로 마실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상수도사업본부는 주민과 환경단체가 삼중수소의 위해성을 너무 과장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사업본부는 담수화 수돗물이 안전하다는 근거로 지난해 12월 해수담수화 시설에서 생산한 수돗물을 채수,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삼중수소 검출 여부를 의뢰한 결과 분석기기가 검출할 수 있는 최소 한계치인 ℓ당 1.37베크렐 이하로 나타난 것을 제시하고 있다.
선진국의 수돗물 삼중수소의 검출 기준이 미국 0∼10베크렐/ℓ, 캐나다 4∼8베크렐/ℓ임을 고려하면 1.37베크렐 이하가 나온 기장 해수담수화 수돗물이 선진국보다 안전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상수도본부는 설명했다.
텔레비전을 1회 시청할 때 인체가 받는 방사선의 양이 극미량의 삼중수소가 든 수돗물을 1년 간 마시는 것보다 10배가량 위해성이 높다는 점도 홍보하고 있다.
◇ 해법 없을까…"신뢰성 회복이 관건"
상수도사업본부는 미국 국제안전위생기관(NSF)에 의뢰한 수질검사 결과가 나오면 오는 4월 말이나 5월께 담수화 수돗물 공급을 시작할 계획이다.
미국 NSF는 우라늄, 총알파, 베타, 라듐 등 6개 방사성물질을 포함한 191개 항목을 검사하는데 사업본부는 삼중수소 검출 여부도 정밀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장 큰 문제는 주민과 상수도사업본부 간에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시는 주민들에게 시민단체, 환경단체 등이 참가하는 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신뢰성 있는 기관에서 삼중수소 검출 '제로(0)'라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협의체에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새해 부산시 업무보고에서 삼중수소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한 정명희 부산시의회 의원은 "물을 마실 주민 입장에서 삼중수소와 관련해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 상호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주민들을 설득하려면 월성 원전에 설치한 삼중수소 제거기의 도입 등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환 상수도사업본부장은 "미국에서 수질검사 결과가 오면 전문가 토론회나 주민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어 담수화 수돗물의 안전성을 적극 알리고 수질검사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하는 방안 등을 마련, 불신을 해소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신의 골이 깊어진 양 측이 쉽사리 협상 테이블에 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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