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재량근무 첫날 "일이라 생각 않으니 더 잘보여"
지자체 최초 시행…현장체험, 휴식 등으로 일상 벗어나
(부산=연합뉴스) 신정훈 기자 = 10일 오후 전략평가가 주 업무인 부산시 시정혁신본부 A 단장은 부산 강서구 녹산공단에 있는 어구전문기업인 H사를 찾았다.
A 단장은 부산시가 지자체 최초로 도입한 재량 근무일인 '감(感) 잡았데이(DAY)'를 맞아 본연의 업무와는 다소 동떨어진 일이지만 중소기업 현장을 체험하고자 무작정 H 사를 방문했다.
연간 805만 달러 어치의 어구를 수출하는 이 업체의 공장 구석구석을 둘러본 그는 이 업체의 대표도 만났다.
그리고 '뭔가 도울 일이 있는지' 생전 처음 만난 H 회사의 대표를 상대로 기업 애로사항에 관해 취재도 했다.
'공장 마당 내 원자재와 완제품 적재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비롯해 여러 애로사항을 들은 그는 메모장에 그것들을 빼곡히 적고는 '시청으로 돌아가 지원방안이 있는지 찾아보겠다"며 인사하고 공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중소기업 지원 관련 부서에 메모지를 전달할 생각"이라며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둘러보니 더 잘 들리고, 더 잘 보이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A 단장처럼 부산시 소속 4급 공무원 119명이 이날 모두 자리를 박차고 시청사 밖으로 나가 재량껏 근무했다.
이날만큼은 20∼30년 동안 시청사로 출근하던 일상에서 벗어나 각자 가고픈 곳이나 발길 닿는 곳으로 출근했다.
경제통상국 B 과장은 이날 오후 평소 한 번쯤 둘러보고 싶었던 기장군의 오리산업단지를 찾았다.
그리고 때마침 산단 입주기업 관계자와 지역주민 등을 대상으로 열린 '산단 진입도로 설명회'를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의 시각으로 지켜봤다.
그는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주민과 기업 관계자 처지에서 설명회를 듣다 보니 '좀 더 친절하고 세세하게 설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문화관광국 C 과장은 이날 정장과 넥타이를 벗어 던지고 멀리서 부산을 찾은 관광객 마냥 가벼운 옷차림으로 영도대교 도개(다리 상판 일부를 들어올리는 것) 현장 등 원도심 관광지를 둘러봤다.
그리고 최근 영화 '국제시장' 때문에 유명해진 국제시장 '꽃분이네' 등지도 찾아가서 '시장 활성화 방안'이 뭔지 공무원이 아닌 관광객 처지에서 고민했다.
시민소통관실 D 과장은 금정산 범어사를 찾아가 모처럼 산방의 안식을 즐겼고, 시 직속기관 E 소장은 근교에서 산행하며 자신의 업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시 관계자는 "재량근무는 민선 6기 현장 우선행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에 찌든 간부 공무원들이 이날만큼은 현장을 둘러보거나 서점을 찾아가 책을 읽고, 영화 등 문화생활을 하는 등 각자의 업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고 여유를 즐기면 된다"고 밝혔다.
이날 4급 공무원에 이어 11일에는 기획관리실장 등 2급 공무원 4명, 24일은 3급 공무원 18명이 재량근무에 나선다.
재량근무 공무원은 자신의 행적에 관해 내부에 알릴 필요도 없고, 보고서도 제출할 필요도 없다. 그냥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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