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도서목록에 숨은 식민지 시대 '책의 수난사'>

편집부 / 기사승인 : 2015-02-06 0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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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서지학회·성대 동아시아학술원 공동 학술대회
압수서적 표시된 '서목제요' 등 일제 강점기 판매도서목록 35종 공개

<판매도서목록에 숨은 식민지 시대 '책의 수난사'>

근대서지학회·성대 동아시아학술원 공동 학술대회

압수서적 표시된 '서목제요' 등 일제 강점기 판매도서목록 35종 공개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대동역사략'(大東歷史略), '미국독립사'(美國獨立史), '이태리건국삼걸전(伊太利建國三傑傳), '을지문덕'(乙支文德), '파란말년전사'(波蘭末年戰史), '서사건국지'(瑞士建國誌)….

일제 강점기 출판사 광학서포(廣學書鋪)가 1910년 6월 발행한 판매도서목록 '서목제요'(書目提要)를 보면 동그라미 도장이 찍힌 책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이 표시의 정체는 목록 표지에 붉은 펜으로 적힌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 표시는 작년 11월17일 총감부에서 압수한 책'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6일 서울 인사동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회관에서 열리는 근대서지학회·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공동 학술대회에서 '서목제요'를 비롯, 근대서지학회가 그간 수집한 일제 강점기 판매도서목록 21종을 소개한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그해 8월 한국을 강제병합한 직후 특히 교과용 도서의 발매금지를 강행했다.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는 11월19일 '안녕질서를 방해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출판물'의 발매와 반포를 금지하고 책을 압수했음을 고시했다.

압수 표시가 된 책들의 성격을 보면 일제의 의도를 파악하기에 어렵지 않다.

'대동역사략'은 대한제국 당시 간행된 국사 교과서다. '이태리건국삼걸전'은 18세기 이탈리아 반도 통일의 주역인 마치니·카보우르·가리발디를 다룬 전기 소설, '파란말년전사'는 폴란드 왕국 말기 독립전쟁을 서술한 역사서다. '서사건국지'는 스위스 독립투쟁을 이끈 영웅 빌헬름 텔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당시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 보도에서도 언급되듯 일제는 자신들의 기준으로 '불온한 문자를 늘어놓는 교과서' 또는 '어린 학동의 두뇌에 불량한 사상을 물들일 가사가 있는 창가 등'을 일제 단속했다. '불온함' 또는 '불량한 사상'이란 압제에 맞선 투쟁이나 독립, 한민족 역사 등에 관한 의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서목제요'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서판매목록이며 총독부가 판매를 금지한 도서의 목록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밖에 최남선이 형 최창선 명의로 설립한 출판사 신문관(新文館)의 판매도서목록인 '신문관발행서적총목록', 1910년대 잡지계를 최남선과 양분한 다케우치가 설립한 출판사 신문사(新文社)의 '서적목록' 등도 함께 공개된다.

1914년 5월 발행된 '신문관발행서적총목록'에는 신문관이 당시까지 발간한 도서가 망라됐다는 점에서 당시 출판 연구와 최남선 연구에 요긴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적목록'에는 신문사가 발간하는 잡지 독자에게 특별할인 혜택을 준다는 문구가 쓰여 있어 당시 출판업계의 고객유치 방식이 엿보인다.



정 교수는 "일제 강점기의 판매도서목록은 당시 출판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 자료"라며 "그 목록을 모으면 출판의 역사가 되고 전적(典籍) 문화의 지도가 되며 정신문화의 자산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일제 강점기 여러 판매목록에 실린 서적을 데이터베이스(DB)로 통합 정리해 정확한 목록을 작성하고 서지와 해제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 모든 서적의 소재를 파악하는 작업을 국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정 교수가 소개한 21종을 포함, 1장짜리 전단부터 100쪽이 넘는 목록까지 35종에 이르는 판매도서목록이 공개된다.

학회와 동아시아학술원은 지금까지 수집된 판매도서목록을 한데 모아 '근대서지총서'로 영인하고 수록 도서의 서지사항을 DB로 구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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