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존폐' 갈등 증폭…"법무부 발표가 원인"

이영진 기자 / 기사승인 : 2015-12-07 20: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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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은 삭발식, 로스쿨생은 집단자퇴…법조계 갈등 심화
△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사시 준비생 3명이 사법고시 존치를 요구하며 삭발식(왼쪽)을 진행했다. 반면 같은 날 서울대로스쿨 학생들은 청와대‧국회‧법무부 등지에서 '사시 2017년 폐지'를 주장하며 정부의 사시 존치 입장 발표에 항의하는 1인시위에 돌입했다.<사진제공=포커스뉴스>


[부자동네타임즈 이영진 기자] 사법시험이 존치 소식이 알려진 후 법조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어 법무부가 섣부르게 ‘사법시험 존치’ 입장을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법무부는 입장 발표 이튿날인 지난 4일 사법시험 존치에 대해 “최종 입장이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 ‘사시 존폐’ 두고 ‘학생 vs 학생, 변호사 vs 변호사’ 대립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박정민(35)씨 등 사시 준비생 3명이 사법고시 존치를 요구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박씨는 “나는 로스쿨 학생들과 밥그릇 싸움을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니다. 싸울 밥그릇조차 없는 사람”이라며 “삭발식을 통해 국민들과 관련부처에 사시준비생들의 결의가 전해졌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산하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변호사 단체도 로스쿨을 ‘현대판 음서제’에 비유하며 사법시험 존치에 힘을 싣고 있다.

 

반면 같은 날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들은 청와대‧국회‧법무부 등지에서 ‘사시 2017년 폐지’를 주장하며 정부의 사시 존치 입장 발표에 항의하는 1인시위에 돌입했다.

 

이날 청와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인 서울대 로스쿨 2학년 장시원씨는 “제 진심이 시민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법치에 대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로스쿨생 480명 중 464명은 4일 법무부의 입장 철회를 요구하며 자퇴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수도권의 인하대와 아주대 로스쿨생들은 법무부 발표 당일 임시총회를 열어 내년도 학사일정 거부와 전원 자퇴서 제출을 의결하고 이번 주 학교 측에 제출할 방침이다.

 

제주대 로스쿨 학생 전체는 7일 자퇴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전국로스쿨학생협의회는 오는 8일까지 전국 24개 로스쿨 학생들이 학교에 자퇴서를 낸 뒤 국회와 교육부, 법원행정처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또 오는 10일 법무부에서 ‘전국 로스쿨 재학생 총회(가제)’를 연 뒤 12일로 예정된 검찰실무시험도 거부할 계획이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단체인 한국법학전문대학원법조인협의회는 김현웅 법무부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 법무부 ‘섣부른’ 발표…대립양상 심화될 듯

 

△ 김주현 법무부 차관이 지난 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2021년까지 사시

폐지 유예'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포커스뉴스>  

사법시험은 2007년 로스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2009년 변호사시험법이 제정되면서 2017년 폐지가 확정됐다.

 

당시에도 대한변협이 로스쿨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는 등 협의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로스쿨 개원 이듬해인 2010년 사법연수원 41기들이 법무부 장관 등에 사시 존치를 위한 입법의견서를 제출했고 2015년 오신환(서울 관악을) 새누리당 의원이 사시 존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고 폐지 시한이 다가오면서 사시 존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사시 폐지가 명시된 변호사시험법의 소관 부처인 법무부가 일을 냈다. 지난 3일 사법시험 폐지를 4년 동안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김주현 법무부 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7년 폐지 예정인 사법시험 제도를 2021년까지 4년 동안 폐지를 유예하고 보완방안을 마련해 제시하고자 한다”며 “국회 법안 심사 과정에 의견을 제시하고 충분한 자료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해 신속한 입법이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위해 ‘사법시험 2017년 폐지’가 명시된 현행 변호사시험법을 국회입법을 통해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정부입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적극 협의해 내년 상반기 중으로 변호사시험법이 개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전했다. 논란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발표 직후 법조계는 사시 존폐를 두고 양분됐고 대법원조차 “법무부의 일방적 발표”라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법무부는 이튿날 “변호사시험법 부칙 개정에 앞서 관계부처와 여러 기관의 의견을 수렴해 다시 최종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자세를 고쳤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법원도 법무부 발표 당일 “사법시험 존치 등 법조인 양성 시스템에 관한 사항은 법무부가 단시간에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대법원도 신중한 검토를 거쳐서 적절한 기회에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이 심화되자 입장표명을 미루는 모양새다.

 

대법원 관계자는 7일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게 없다. 나오는 대로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전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은 사시 존폐 입장에 상관없이 이 같은 논란에 법무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회 법사위의 한 관계자는 “정부기관인 법무부가 사회적 약속이 끝난 사시 폐지를 두고 입장을 발표한다는 건 부적절한 행위였다. 입법기관은 국회다”며 “발표 당시 국회와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와의 공감대가 없는 일방적 발표였고 논란만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사시 존폐는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정권에 부담이 되는 일이다. 이를 덜기 위해 법무부가 스스로 나서지 않았나 생각된다”면서도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표 당시 사시 폐지를 약속했다. 대통령 스스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서울변회 소속 한 변호사도 “법무부가 사시 폐지 4년 유예 입장을 밝혔지만, 폐지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 이는 대다수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며 “법무부는 법조계에 혼란만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문제를 법조계 내부의 문제로 인식해서는 안된다”며 “토론회를 활발히 열고 다수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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