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사시폐지 4년 유예…로스쿨 최대 위기

이영진 기자 / 기사승인 : 2015-12-03 16: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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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치 "법무부가 책임 회피한 것" vs 폐지 "법무부가 국민과 약속 어겼다"

[부자동네타임즈 이영진 기자] 법무부가 3일 사법시험 폐지를 4년 동안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김주현 법무부 차관은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7년 폐지 예정인 사법시험 제도를 2021년까지 4년 동안 폐지를 유예하고 보완방안을 마련해 제시하고자 한다”며 “국회 법안 심사 과정에 의견을 제시하고 충분한 자료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해 신속한 입법이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를 위해 ‘사법시험 2017년 폐지’가 명시된 현행 변호사시험법을 국회입법을 통해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 차관은 “정부입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적극 협의해 내년 상반기 중으로 변호사시험법이 개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또 사법시험의 2021년 폐지를 전제로 △로스쿨 이외의 별도 시험을 통해 변호사 시험 응시 자격 부여 △입학, 학사관리 채용 등 로스쿨 제도 개선 △사법시험 존치가 다시 논의될 경우 사법연수원과 다릴 별도의 대학원 형식 연수기관을 설립해 자비로 연수하는 방안 등을 유예에 따른 대안으로 내놨다.

 

법무부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일반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신뢰도 95%, 표본오차 ±3%)를 벌인 결과, 2017년 사시폐지에 반대하는 의견이 71.6%로 나타났다.

 

또 사시 존치에 찬성하는 의견은 85.4%로 조사됐다.

 

특히 사시 폐지는 시기상조이므로 조금 더 실시한 뒤 판단하자는 의견도 85.4%로 나타났다.

 

김 차관은 “로스쿨 제도 도입 후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 정착 과정에 있고 로스쿨 제도의 개선 필요성도 있다”며 “그 경과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어 사법시험 폐지를 유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로스쿨 및 변호사시험’ 제도가 시행 10년을 맞는 시기가 2021년이고 그때가 되면 변호사시험의 5년·5회 응시횟수 제한에 따라 불합격자 누적이 정체돼 응시인원이 약 3100명에 달하는 시기 또한 2021년인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게 법무부 설명이다.

 

반면 법무부는 사법시험 폐지 유예에 따른 세부인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다.

 

올해 150명에서 내년 100명, 내후년 50명으로 줄일 예정이었던 사법시험 선발 인원이나 변호사시험법 개정에 대한 국회와 논의 수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김주현 차관은 “사법시험 선발 인원이나 검사 선발에 있어서의 로스쿨‧사법시험의 비율 등은 법이 마련된 이후에 논의가 가능하다”면서도 “국회와는 사전에 이야기된 부분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2021년 사법시험 폐지에 대한 입장은 명확히 했다.

 

그는 “현행 법무부의 입장은 2021년 사법시험 폐지다. 법조인 양성 경로 역시 로스쿨로 일원화하겠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무부 입장대로 사법시험 폐지가 4년 유예된다 해도 2021년 최종 폐지될지는 미지수다.

 

법무부는 지난 2009년 로스쿨제도를 도입하면서 사법시험 폐지를 입법화했다. 그랬던 법무부가 여론을 이유로 유예를 결정한 것은 내년 총선과 이어지는 대선에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라는 지적이다.

 

법무부가 유예 시점으로 제시한 2021년 역시 앞뒤로 총선과 대선을 두고 있어 사법시험 폐지 여부가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발표로 법무부가 사시 존치 측 손을 들어준 셈이 되면서 로스쿨은 시행 6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그동안 로스쿨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 사시 존치의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특히 로스쿨은 ‘음서제 논란’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최근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아들 졸업시험 압력 행사’ 등이 대표적이다.

 

국회의원과 전관 법조인 등 일부 고위층 자제들의 로스쿨 입학부터 졸업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시 존치 측 역시 이같은 점을 이유로 사법시험을 존치하고 로스쿨의 투명한 운영을 촉구해 왔다.

 

여론 역시 급격히 악화됐다.

 

당초 로스쿨이 등장할 당시에는 사시 폐지 쪽 의견이 우세했다면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실제로 법무부가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이같은 점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로스쿨의 고비용 문제 역시 줄곧 지적을 받아왔다. 사회적 약자의 로스쿨 진학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사시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로스쿨의 경우 다양한 장학금 혜택이 있어 학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반박하며 오히려 사법시험이 고비용 사교육을 필요 하는 시험이 됐다고 맞섰다.

 

물론 이날 정부의 발표가 사시존치 쪽의 완벽한 승리라고는 볼 수 없다.

 

사법시험의 영구 존치가 아닌 한시적인 유예 결정이기 때문이다.

 

사시 존치를 주장한 변호사 단체들이 이번 결정에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 역시 이같은 이유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법무부 결정 직후 성명을 발표해 “법무부 방침에 매우 반대한다”고 밝혔다.

 

변협은 “법무부의 이번 입장 발표는 4년간 유예한 뒤 사시를 폐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법무부가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이제 국회 논의과정에서 존치하는 입법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역시 같은 입장을 보였다.

 

변회는 “법무부 발표는 사법시험이 존치돼야 할 필요와 사회적 합의가 있음을 법무부가 동의한 것”이라며 “법무부 설문조사 결과 국민 80%이상이 로스쿨제도에 대한 개선 필요성 인식 아래 사법시험 존치를 원하고 있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부의 입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변회는 “향후 4년만 사법시험을 존치한다는 입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면서 “지금에 와서 또다시 사법시험을 한시적으로 존치하자는 것은 혼란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의미와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80%가 넘는 국민들이 소수의 인원이라도 사법시험을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몇 명의 수험생 때문이 아니다”며 “올바른 법조인력 양성제도를 정착시키고 보다 나은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국민에게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회 측은 “4년간 한시적으로 사법시험을 존치시키겠다는 법무부의 발표는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대다수 국민의 열망이 확인되고 있고 주무부서인 법무부조차 현 시점에서 사법시험의 폐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한 이상 국회는 망설이지 말고 즉시 관련 법안을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시 폐지를 주장해온 측의 반발 역시 거세다.

 

전국 25개 로스쿨 원장으로 이뤄진 법학전문대학원 협의회는 “법무부가 ‘박근혜 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방침을 스스로 버렸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협의회는 “법무부는 떼쓰는 자들에게 떠밀려 합당한 사유에 근거한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사법시험 연장이라는 미봉책을 내놓아 우리나라 법치주의의 수준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또 “믿음의 법치를 강조하던 법무부는 지난 7년 동안 2009년에 만들어진 법률을 믿은 로스쿨 진학자 1만4000명과 그 가족들의 신뢰를 무시하고 떼법을 용인해 ‘떼법의 수호자’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국회가 떼법을 용인하지 않고 법률을 믿은 대다수 국민의 신뢰를 보호하고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사법개혁의 대원칙을 공고히 할 것을 믿는다”며 “국회 입법과정에서 법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학생들은 대부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3년째 사법고시를 준비 중인 A(30)씨는 “3년째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2017년까지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불안했다”며 “이제 4년의 기회가 더 생겼으니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다는 B씨(27) 역시 “사법시험이 없어지면 로스쿨을 가야하는데 학비가 만만치 않아서 걱정이 많았다”면서 “그래도 일단 사법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늘어난 것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반면 로스쿨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한 로스쿨에 재학중인 C씨(29)는 “정부의 발표를 믿고 로스쿨에 진학해 공부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사시 폐지를 유예하겠다고 하니 정부에게 속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로스쿨에 재학 중인 D씨(29) 역시 “친구들끼리 한 약속도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한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을 이렇게 어겨도 되는 것이냐”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 결국 사법시험을 존치하겠다고 하는 것 아닌지 불안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법무부의 이번 결정은 사시 존치와 폐지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라며 “어느 한 쪽을 지지할 수 없으니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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