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종택주필 |
[부자동네타임즈 황종택주필] 초년 출세(出世), 중년 상처(喪妻), 말년 무전(無錢)’. 남자는 이 세 가지 불행만 피하면 성공한 인생이라고들 한다. 그렇다. 50세 전후 배우자를 잃으면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삶 자체를 피폐하게 만든다. 인생 황혼에 찌든 가난 역시 자녀에게나 주위에 짐이 된다. 초년 출세는 선망의 대상일 수 있다. 하지만 위험도 크다. 너무 일찍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출세가도를 달리다 한 번 추락하면 날개가 없는 듯 급전직하 하곤 한다. 삶을 웅숭깊게 하는 단계를 밟아 오를 때 맛보는 성취감을 모르기 때문일 터이다.
산 찾아 떠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비애
우리 사회에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중·장년층의 ‘불운’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의 조기 은퇴에 따른 비애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1955년부터 63년 사이 태어나 부족한 환경에서도 부지런함과 인내로 부의 기초를 닦았다. 그래서 권리의식이 강하며 사회참여도 활발하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산업화와 자유민주주의를 학습한 세대이다. 직접적인 전쟁 상흔도 없어 남북 관계를 보는 시각엔 균형감도 있다.
문제는 한국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쇠한 것도 아닌데 퇴직해 사회 뒤편에 물러나야 할 판국이 됐다는 점이다. 10년 이내 약 720만명이 된다. 이들이 은퇴 후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해 실버민주주의를 횡행시킨다면 젊은 세대와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갈등의 전조는 벌써 강하다.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베이비부머 가장들이 산으로 몰리고 있다. 중·장년층의 ‘슬픈 출구’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감 탓이었을까. 이들에게 자신은 물론 가족에 대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이비부머 가장들은 자녀들에게 물심양면 최선을 다했지만 아버지식 사랑을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자녀들에게 소외받는 가장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타는 속을 아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친구들끼리 어울려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주말 수도권 등 대도시 일대의 산에 몰리는 등산객들을 보면 대부분 40대에서 60대 남성들이 많다.
50~60대 남성들의 경우 동년배들끼리 몰려오곤 한다. 실제로 서울의 한 등산클럽은 인터넷 카페 가입부터 1971년생부터 1941년생으로 연령을 제한해 중년들만의 산행을 즐긴다.
56∼60세면 한창 일할 나이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도 젊은이들 못지않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 생태계의 생존경쟁에 치이거나 정년에 발목을 잡혀 직장을 나온다. 걱정은 노후 준비가 부실하다는 사실이다. 노인 빈곤으로 직결된다. ‘말년 무전’의 현실화다. 황혼 이혼으로 불똥이 옮겨지기도 한다. 사실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사회안전망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3.3%)의 3배가 넘는 45%에 이른다. 특히 베이비부머의 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은 월 46만원에 불과하다. 코끼리 비스켓이다.
‘말년 無錢’ 현실 타개할 사회안전망 절실
지금의 중·장년들도 20대였을 때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살았다. 품격 있게 늙어, 은퇴 후에는 멋진 전원주택에서 뛰어노는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보며 문화생활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걸 믿고 앞만 보고 달렸다. 웬걸, 40대 초반부터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꿈들은 하나씩 ‘착각’으로 밝혀지기 시작한다. 상당수 직장에서는 연공이 자랑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이런 중년들이 성찰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이 주변을 보지 않고 살았다고, 아내를 더 사랑했어야 했다고,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고. 하지만 이제야 그 가치를 찾았다고 기뻐하는 중년 남성을 대부분의 가족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젊은 시절 ‘잔소리’했던 아내 역시 힘이 빠진데다 지쳤고, 장성한 자녀들은 제 일에 바빠 얼굴 한 번 보기 쉽지 않다. 이런 중년 남성들이 저녁이면 선술집에서 신세를 한탄하고 세상을 희롱하며, 주말·휴일이면 산에 모여 먼 산을 쳐다본다.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되뇐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저작권자ⓒ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