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이유로 죽음 당하는 현실 공포스럽다" 시민들 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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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 물결의 흔적으로 뒤덮힌 강남역 |
[부자동네타임즈 이채봉 기자] 19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번출구. 도심에 위치한 빌딩의 형광등이 하나 둘씩 꺼질 무렵 100여개의 작은 촛불들이 하나 둘씩 켜졌다.
이날 강남역 10번출구 앞에서는 지난 17일 오전 1시20분쯤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흉기로 찔려 살해당한 직장인 A씨(23·여)의 죽음을 애도하는 작은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오고가는 행인들로 강남역 주변 골목은 북적였지만 초를 켠 시민들은 질서를 유지하며 불을 나눠 붙였다.
둥글게 대형을 만든 시민들은 발언대도 만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둘씩 꺼냈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방배동에 거주하는 30대 여성은 "이웃에 살던 여성이 동거남에게 살해당했는데, 알고보니 경찰에 폭행 신고를 했음에도 무시당했다고 한다"며 "살인범도 무섭지만 그걸 방관한 경찰도 무섭다"며 숨죽여 말했다.
발언대에 나선 한 여성은 자신을 피해자와 같은 나이인 23살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만약 내가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가 죽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자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는 게 공포스럽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촛불들 사이로 팻말을 준비해온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여성혐오범죄 #강남역 살인사건"이라는 글자가 쓰인 작은 손팻말을 준비했다.
박모(24‧여)씨는 "이제 여성들은 화장실에 갈 때조차도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언제든 살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려고 팻말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박씨는 "이번 사건은 묻지마 살인이 아닌 선택적 살인"이라며 "여성혐오 범죄라는 사건의 초점이 흐트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여전히 글과 국화꽃 한송이로 애도의 뜻을 전하려는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김모(25)씨는 "살인이 여자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언론을 통해 봤다"며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성들이 누려온 것이 많은만큼 이 사건을 계기로 일부 남성들의 그릇된 여성 혐오 시각들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강모(25·여)씨는 휠체어를 타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추모 현장을 찾았다. 강씨는 "살해 장소에서 죽을 수 있었던 것이 나일 수도 있었겠다는 비통한 생각에 한 걸음에 달려왔다"며 "몸이 불편한 나로써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더욱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앞서 경찰은 17일 오전 1시 20분쯤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직장인 A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를 붙잡았다.
경찰조사 결과 김씨는 피해자 A씨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2008년에 1개월, 2011년과 2013년, 2015년에 각 6개월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낮 12시까지 프로파일러를 동원해 면담한 결과 "피의자 김모(34)씨가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이후 약을 복용하지 않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는 여성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구체적인 사례가 없이 평소 여성으로부터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오후 8시쯤 서울 서초구 강남역 10출구에서 강남역 근처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피해자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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