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동네타임즈 이현진 기자]영국 출신의 배우라고 하면 누구를 떠올릴 것인가?
흔히들 007 시리즈로 유명한 숀 코넬리와 피어스 브로스넌, 그리고 느끼한 신사 휴 그랜트나 짐승남 제라드 버틀러를 떠올릴 터인데, 오늘은 올드 무비에서 팬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두 영국배우를 기억해 보고자 한다.
◆두 영국배우 제임스 메이슨과 제레미 아이언스
1940년대와 50년대를 풍미했던 제임스 메이슨과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제레미 아이언스가 그들이다. 이 두 영국배우는 연극무대에서 연기활동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을 지니는데,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에서 각 남자주인공을 맡아 서로 다른 분위기의 연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두 영국신사는 바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문제적 소설 ‘로리타’를 스크린으로 옮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2년작 영화와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1997년작 영화에서 각 로리타를 사랑한 험버트 교수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40년대 청춘스타 제임스 메이슨, 롬멜 장군 전문배우로 전설이 되다.
제임스 메이슨은 우리나라의 30~40대 이상의 영화팬이라면 누구라도 어린 시절 TV에서 ‘주말의 명화’ 코너에서 상영한 영화를 통해 한두번쯤 그 모습을 보았던 배우.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지적인 청년 제임스 메이슨은 연극무대를 거쳐 스크린에 데뷔하는데, 관능적인 로맨스물에서 ‘시무룩하고 섹시하고 나쁜 남자’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1940년대 영국 최고의 청춘스타로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우리나라 팬들이 기억하는 제임스 메이슨의 영화는 관능적인 로맨스물이 아니라 전쟁물이었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1951년 영화 ‘사막의 여우’에서 독일의 롬멜 장군 역할을 맡았고, 다시 2년 후인 1953년에도 ‘사막의 대진격’(원제: 사막의 쥐)이라는 영화에서 또다시 롬멜 장군 역할을 연기하면서 전세계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이다.
영화배우로서 최고의 티켓파워를 보여주던 전성기였던 1940년대에 2차 대전을 겪은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군입대를 거부하였다고 전해진다. 영국은 한때 해군으로 전세계를 지배했고 영국 왕실의 남자들도 군복무를 하는 것을 전통이자 자랑으로 여기는 나라인데, 당대 최고의 배우가 전쟁 중에 병역을 기피하였으니 한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당연할 것이다.
제임스 메이슨은 이로 인해 가족들과도 다소 틈이 벌어졌다고 하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 그가 전쟁영화에 출연하고 더욱이 적국이었던 독일의 롬멜 원수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어찌 되었던 전쟁후에도 제임스 메이슨은 다양한 영화에서 팬들에게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군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그였지만 ‘사막의 여우’에서도 롬멜 장군 역을 멋지게 해낸다.
그리고 이 영국신사는 2년후인 1953년에는 ‘사막의 대진격(Desert Rats)’에서 롬멜 원수 역할을 다시 연기한다.
전작인 영화 ‘사막의 여우’는 롬멜 원수의 별명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고, 사막의 대진격의 원제 ‘사막의 쥐’는 영국 제7기갑사단의 별칭 또는 영화속에 등장하는 호주군 9사단의 별칭으로 알려진다. 즉, 사막의 여우는 영화 제목 자체에서 롬멜 원수의 일대기인 것을 알 수 있고, 사막의 쥐는 롬멜 장군과 사막의 쥐(호주군 9사단) 사이의 혈투가 그 스토리인 것을 알 수 있다.
사막의 쥐에서는 또다른 영국신사 리차드 버튼이 영국군 장교역할을 맡아 제임스 메이슨과의 연기대결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영화속에서 단순히 전투를 지휘하는데 그치지 않고 리차드버튼이 독일군에 포로로 잡히면서 롬멜 장군(제임스 메이슨)을 만나는 장면이 비중있게 묘사되어 있는데,
20대의 젊은 리차드 버튼과 40대의 원숙한 제임스 메이슨과의 연기가 볼만하다.
이후 제임스 메이슨은 1959년작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에서 케니 그란트와 함께 연기하였고, 안소니 만 감독의 1964년작 ‘로마 제국의 멸망(The Fall of the Roman Empire)’에서 소피아 로렌, 오마 샤리프 등과 연기하면서 우리 나라 팬들에게도 TV속에서 여러 차례 모습을 알리곤 하였다. 이쯤되면 올드 팬들은 제임스 메이슨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기억하며 지난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메이슨과 수 라이온의 1962년작 ‘로리타’
이제 제임스 메이슨이 험버트 교수를 연기한 로리타에 대해 말할 때가 되었다.
영화팬들이라면 스탠릭 큐브릭 감독을 기억할 것이다. 최근 작품인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은 ‘아이즈 와이드 샷’을 비롯해서, 이제는 고전명작이 된 영화 ‘스파르타쿠스’·‘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시계태엽오렌지’·‘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남긴 바로 그 감독.
영화 로리타는 그런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0년 커크 더글라스와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의 ‘스파르타쿠스’를 크게 흥행시킨 바로 다음에 택한 작품이다. 거장의 선택인 만큼 소설 로리타, 그리고 1962년작 영화 로리타는 모두 만만히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964년작 로리타에서 남자 주인공 험버트 역할은 제임스 메이슨, 여주인공인 로리타 역은 수 라이온(Sue Lyon)이 맡았는데, 수 라이온이 1946년생이니 제작 당시인 1963년에는 15세, 영화가 개봉된 1962년에는 16살이었다고 한다. 본래 소설속의 로리타는 12세이지만 영화에서는 여러가지 논란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서 로리타의 나이를 16세로 설정하였다고도 알려진다.
바로 위 장면이 그 유명한 험버트 교수와 로리타의 첫만남 장면이다.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던 집 뒷 정원의 풀밭 위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로리타를 보고서 험버트 교수는 혼을 빼앗긴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997년작 영화 ‘로리타’에서는 로리타(도미니크 스웨인 분)가 치아교정기를 끼고 얇은 원피스를 입고 잔디위에 누워 책을 읽던 중 험버트 교수(제레미 아이언스)를 만나게 되는데, 두 작품의 첫만남 장면을 비교해서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비키니 차림의 로리타든 치아교정기를 낀 로리타든, 잔디밭에서의 첫만남 이후 로리타는 험버트 교수에게 있어 영원한 구원의 여인이 된다.
1962년작 로리타에서는 50대에 접어든 제임스 메이슨의 중후한 감정 변화와 연기도 볼만하지만, 아무래도 이 영국신사보다는 수 라이온이 연기한 로리타를 보기 위한 영화로 생각하면 된다. 당시 16세였던 수 라이온에게 영화 ‘로리타’는 뒤에서 보는 ‘이구아나의 밤’과 함께 20여년 연기인생을 통틀어 평생의 대표작으로 남게 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2년작 <로리타>의 공식 예고편
◆에바 가드너와 데보라 카의 매력을 압도했던 수 라이온, 쓸쓸히 영화계를 떠나다.
수 라이온은 1962년 로리타의 개봉 이후 1964년 리처드 버튼, 에바 가드너, 데보라 카 등의 대배우들과 함께 ‘이구아나의 밤(The Night of the Iguana)’에 출연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도 성직자를 연기한 리차드 버튼에게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으로 다가서는 어린 팜므파탈을 연기한다.
즉 영화 ‘이구아나의 밤’은 물론 당대 최고의 배우들의 연기도 볼만 하지만, 실은 ‘로리타’에서 보여준 수 라이온의 매력에 상당히 기댄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때를 풍미하던 명배우 데보라 카와 에바 가드너도 수 라이온의 생기발랄한 매력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세월이란 때로는 서글픈 것이다.
그러나 수 라이온 역시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었던지 1980년 영화 ‘엘리게이터’ 촬영을 마지막으로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 18세 시절 데보라 카와 에바 가드너의 매력을 압도하였던 바로 그 배우의 마지막 작품이 시덥잖은 B급 공포영화였고 그나마 맡은 역할이 단역이었다는 사실은 그녀의 올드팬들을 매우 슬프게 한다.
(하편에 계속)
/법무법인 동인 윤현철 변호사1951년작 영화 ‘사막의 여우: 롬멜 스토리(The Desert Fox: The Story Of Rommel, 1951)’에서의 제임스 메이슨<사진출처=영화 사막의 여우 롬멜 스틸컷>1953년작 영화 ‘사막의 대진격(원제: Desert Rats)’에서 다시 롬멜 장군을 연기한 제임스 메이슨<사진출처=영화 사막의 대진격 스틸컷>1964년작 영화 ‘로마 제국의 멸망’에서 교육자이자 철학자인 티모리테스 역할을 맡아 중후한 연기를 보여준 제임스 메이슨<사진출처=영화 로마 제국의 멸망 스틸컷>험버트 교수와 로리타의 첫만남<사진출처=1962년 영화 로리타 스틸컷>험버트 교수와 함께 있는 로리타. 이때 로리타는 16세의 소녀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고, 사랑을 갈구하는 험버트 교수는 이미 로리타의 손바닥 안에 있다.<사진출처=1962년 영화 로리타 스틸컷>이구아나의 밤에서의 수 라이온(오른쪽)과 그 옆에서 선 대배우 데보라 카(중앙), 에바 가드너(왼쪽). 1953년작 ‘사막의 대진격(사막의 쥐)’에서 젊은 영국군 장교를 연기했던 리차드 버튼은 이후 헐리웃에 진출해 11년이 지난 1964년에는 이렇게 대배우로 성장했는데, 바로 이 해에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순례자’라는 이름의 세상에서 가장 큰 진주를 선물하며 청혼하는 것이다.<사진출처=영화 이구아나의 밤 트레일러 스틸컷>1964년작 ‘이구아나의 밤’에서 청초한 매력을 보여준 수 라이온<사진출처=영화 이구아나의 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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