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 아빠'는 악극 공연 중…"언젠가 사라질까 걱정"

이현진 기자 / 기사승인 : 2015-06-07 08: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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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봉 인터뷰…"악극만이 줄 수 있는 진한 향수 선물하고파"


[부자동네타임즈 이현진 기자] "처음에는 먹고 살려고 악극을 시작했어요. 이제는 악극이라는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합니다. 악극을 이어나갈 후배가 없어 언젠가는 사라질까 걱정입니다."

막상 얼굴을 보면 '만수 아빠'나 '쿠웨이트 박' 같은 TV 드라마 속 캐릭터가 먼저 떠오르는 배우 최주봉(70). 그는 지난달부터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악극(樂劇) '봄날은 간다'을 공연하고 있다.

최근 브라운관에선 그의 활동이 뜸한 상태다. "역할을 맡으면 그 역할에 미치다시피 매달리다 보니 한번에 여러 작품을 못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다.

감칠맛나는 TV 배우인 그가 악극을 공연한다고 하면 상당수 젊은 시청자들은 그가 '악극으로 외도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TV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의 '만수 아빠'로 이름을 알리기 전 십수년을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TV로 옮겨온 연극인 출신 탤런트다. 악극 공연 자체도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4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대학교 4학년이던 1969년 이순재 선배가 나오던 '시라노 드 벨쥬락'으로 프로 극단에 몸을 담았다. 학교를 졸업한 뒤 극단 가교에 들아가 거기서 평생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윤문식, 박인환, 김진태 등 그와 친한 동료 배우들이 모두 극단 가교 출신이다.

또한 코믹한 이미지와는 달리 '의식있는' 사회비판적인 연극에 주로 출연했다.

그러던 그가 방송에 나간 것은 연극배우로 10여년째 활동하던 중이었다.

"1979년 한 PD분이 절 연극무대에서 보고 드라마 '형사'에 강도 역으로 캐스팅하면서 TV에 처음 출연했습니다. 그때 연기가 좋은 인상을 남겼던지 그걸 계기로 단역을 하다가 '한지붕 세가족'까지 나가게 됐어요."

생활을 위해 발을 들인 브라운관에서 얼굴을 알렸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연극무대에 있었다.







그는 TV에서 얻은 인지도를 등에 업고 무대로 다시 돌아왔지만 경제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커가는데 극단만으로는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을 시점에 그가 윤문식, 박인환 등과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선보인 것이 바로 악극이었다.

그는 "솔직히 처음에는 먹고 살려고 했다. 1977년에 악극 '이순일과 심순애'를 했다가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는 젊어서 전근대적인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더는 하지 않았는데 어려워지니 그 생각이 나더라. 그래도 오랜만이라 반신반의하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1993년 선보인 '번지없는 주막'이 대박이 났다. 대학로 공연장 매표소 앞에는 몰려든 관객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극단은 그 여세를 몰아 '홍도야 울지마라' '울고 넘는 박달재' '비내리는 고모령' 등의 악극을 연달아 선보였다. 지금 공연 중인 '봄날은 간다'도 그때 했던 작품이다.

악극 '봄날은 간다'는 결혼한 바로 다음날, 배우의 꿈을 이루고 돌아오겠다며 고향에 부모와 아내 '명자'를 두고 떠난 '동탁'을 주인공으로 한다. 동탁이 고생 끝에 꿈을 이루려는 찰나에 그만 전쟁이 일어나고, 총상으로 불구의 몸이 된 그는 가까스로 고향에 돌아가지만 고향에는 불타버린 집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동탁은 원래 갖고 있던 이발 기술로 전국을 돌며 가족을 찾아 헤맨다. 그렇게 평생을 보내다 들른 한 주막에서 아내를 만나지만 아내를 알아보지 못한 채 다시 길을 떠난다.

그는 그동안 출연한 15편의 악극 중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으로 바로 이 '봄날은 간다'를 꼽았다.

"사실 악극 소재가 비슷비슷합니다. 부모에 대한 효, 남녀의 사랑과 배신, 일본강점기의 수탈 …. 그런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소재가 모두 담겨있어요. 우리 옛날이야기가 두루두루 담겼으니 누구나 와 닿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서 "작년에 10년 만에 다시 한번 무대에 올려보지 않겠느냐고 했을 때 망설이지 않았다. 올해 앙코르 무대를 하자는 제안도 마찬가지로 바로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악극이라는 장르가 TV나 연극과는 또 다른 연기 '기술'이 필요하다고 소개했다.

언뜻 보기에는 쉽지만 악극 특유의 어투를 살리기가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극처럼 밋밋하게 하면 안된다. 목소리를 한톤 올려야 한다. 그렇다고 자칫 잘못하면 오버하는 것처럼 비쳐서 코미디로 전락한다. 대사에 진한 양념 같은 게 배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악극이라는 장르가 오래가지 못할 것을 우려했다.

악극을 경험해본 선배와 동료 세대들이 나이가 들어 무대에 서기 어려운 가운데 악극을 배우려고 나서는 후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신과 함께 동탁 역으로 캐스팅된 정승호가 상당히 근접하게 해내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그는 '명자'역을 맡은 후배 배우 양금석에 대해서도 "여러 여배우들이 출연 조건부터 따지고 들 때 자기가 한번 해보겠다며 나선 씩씩한 후배"라고 칭찬했다.

현재 양금석이 연기하는 아내 '명자'는 지난해 공연에서 고(故) 김자옥이 맡았다.

최주봉은 "김자옥 씨가 하루 두번 공연이 있는 날이면 중간에 누워 한참을 쉬곤 했다. 노래도 힘에 부쳐 한곡만 불렀는데 그 정도로 나쁜 상태인 줄은 몰랐다"면서 "그럼에도 무대에만 오르면 연약하면서도 질경이 같은 한국 엄마의 모습을 제대로 연기했다. 그의 연기에 객석에선 항상 눈물이 쏟아져나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후배 배우들의 연기를 이야기하던 중 자신도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연기의 날을 뾰족하게 세우기 위한 노력을 지속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노력하지 않는 후배들을 보면 화가 난다"고 그는 말했다.

"그냥 해도 무난히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연기는 노련함에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어느 무대에서든지 불러주면 바로 달려가서 남과는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년 수천명씩 쏟아지는 배우들 사이에서 선택받을 수 없어요."

하지만 그의 연기는 당분간 TV보다 무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그가 다음달 열리는 대구국제뮤지컬무대에도 참여해 창작뮤지컬 '태화강'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최주봉은 "일단은 지금 무대에서 온 힘을 다해 관객들에게 악극만이 줄 수 있는 진한 향수를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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