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68 ) 문전성시를 이룬 사무실

조영재 기자 / 기사승인 : 2025-05-03 21: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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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어깨에
날개를 달아 준 사람들

나는 일벌레였다. 밤늦도록 정말 개미처럼 일했다. 그리고 새벽에 1시간 거리의 신혼 집으로 되돌아 와서 잠시 눈을 붙히고 다시아침 일찍 운전대를 잡았다. 롭슨스트리트에 있던 사무실은 날이 갈수록 밀려드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직원을 더 채용하여 바쁜 일손을 덜고자 했다. 컴퓨터도 더 많이 설치하여 학생들이 마음대로 와서 학교등 여러가지 정보도 얻고 한국 가족에게도 이메일을 보내도록 했다. 일본어를 잘하는 직원을 채용하여 일본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밴쿠버의 일본 학생들에게 나는 ‘킴상’으로 통했다. 장소가 비좁아 못 들어오는 학생들은 밖에서 기다려야할 정도로 붐비기 시작했다. 방학이 되면 사무실은 더욱 바쁘게 돌아갔다. 밴쿠버에 왔던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친구들에게 ‘김옥란’을 알려 주었다. 어느 날 오후, 부산에 산다는여학생 2명이 큰 가방을 하나씩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지금 공항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곳 캐나다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돌아
간 친구가 “무조건, ‘김옥란’을 찾아가면 된다”고 해서 물어 물어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사무실 주소도 전화번호도 없이 그저 친구로부터 “롭슨스트리트에 있는 가장 높은 건물을 찾아가면 ‘김옥란’이 있다”는 말만 듣고왔다고 했다. 이들 두 여학생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운전 기사에게 롭슨스트리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 앞에 내려 달라고했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곳은 랜드마크호텔이었다. 잘못 찾아온것 같은 느낌이 든 여학생들은 거리로 다시 나와 지나가던 한국 학생에게 “혹시 김옥란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이 이곳까지 친
절하게 데려다 주더라는 거였다.
나는 이들 학생들에게 곧바로 하숙집을 찾아서 보내 주고 영어학교도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닐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었다.
내 이름 석 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국, 일본까지 건너가고 있었다. 자연히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내 사무실은 언제나 젊은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내 주변에는 하나 둘씩 같은 종류의 사무실 간판이 늘기 시작했다. “우리 직원이 나가서 성공하면 반가운 일 아니야?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할 일을 잘해 나가자.” 직원들의 독립은어차피 이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었다. 이제그 여건이 성숙되어 결행된 것일 뿐 결코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라고매도할 일은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의 독립이 뚜렷한 성과를거두기를 바랐다.
나는 습관처럼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언제나 나를 현실에안주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으며 시름을 덜어 줌과 동시에 관용과 희망까지도 갖게 해 주었다.
나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도피하지는 않았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높은 벽들을 과감하게 뚫고 나갔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장비를 총동원했고, 그 장비가 구식이 되면 다른 새로운 장비를사용했다. 물론 그 장비는 바로 나의 아이디어와 인내력이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보다 실질적인 밀착 정보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 첫 번째 위기를 무난하게 극복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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