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보수가 몰락하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보수 정당 국민의힘이 몰락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진 전국 단위의 6.3 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국적으로 압승을 거뒀다.
선거기간 당 지도부와 거리를 둔 오세훈 시장의 서울 사수를 제외하면, 국민의힘은 전통 텃밭인 대구·경북과 경남만 지켰다. 6.3지선 결과를 놓고 보면, 국민의힘이 지역 정당처럼 보이는 게 분명한데도 당대표는 어처구니없이 희망의 불씨를 지켜냈다고 자위한다. 이러한 시대착오적 인식은 국민의힘에 닥친 위기가 일시적이기보다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만성적 고질병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낸다. 결국 보수 정치세력은 외부적 충격으로 급격히 추락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 요인에 의해 서서히 몰락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주요국의 정치 흐름과 비교해보면, 한국 보수의 몰락은 더욱 뚜렷하다. 서구 유럽에서는 좌파 정당이 약화되고 우파 정당이 성장하는 우경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일부 지방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AfD가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SPD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에서도 우파 정치세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좌파 정당의 기반인 사회민주주의가 약화되고 새로운 우파 정치가 부상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역사적으로 산업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간 유럽의 경제구조는 크게 변화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는 점차 쇠퇴하고 서비스 경제와 지식 경제가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산업 노동자 계층은 급격히 감소했다.

그 결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의존해온 전통적 지지 기반은 약화되고, 새로운 경제 구조 속에서 불안정한 고용과 지역 경제침체를 경험하는 일부 계층은 기존 좌파 정당보다 반체제적 메시지를 내세우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에 더 쉽게 끌리게 된 것이다.
포퓰리즘은 흔히 ‘순수한 인민’과 ‘부패한 엘리트’ 사이의 대립에 기초한 '얇은 중심의 이데올로기' 혹은 '담론적 프레임'으로 정의된다. 서구 유럽에서 부상하는 급진 우파 정당들은 이를 ‘경제적 민족주의’라는 구체적인 정책 플랫폼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글로벌화로 위협받는 노동계층(고립주의 선호)과 복지국가에 회의적인 중산층(경제적 보수주의 선호)이라는 이질적인 지지층을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결속시킨다.
■스스로 변하지 못해서 몰락 자초
세계화 시대에 국제경쟁의 심화와 산업구조 재편은 많은 지역에서 경제적 불안과 지역 격차를 확대했다. 사회적 지위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특히 유럽에서 난민 문제로 더욱 증폭되었다. 난민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부 유권자들은 급격한 인구 구성 변화가 자신들의 문화적 환경을 위협한다고 느낀다.
극우 정당들은 난민 문제를 국가 정체성이나 문화적 생존의 문제로 프레이밍하며 이러한 불안을 정치적으로 활용한다. 반면 전통적 좌파 정당은 인권과 다문화주의를 강조하는 입장을 취하는 까닭에 일부 유권자들은 좌파 정당이 자신들의 경제적·문화적 불안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게 된다.
서구 유럽에서 좌파 정당이 쇠락하는 다른 중요한 요인은 좌파 정당의 정체성 위기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1990년대 이후 ‘제3의 길’이라 불리는 노선을 통해 시장경제와 복지국가를 결합하려고 했다. 이러한 정책은 일정 기간 경제적 성과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좌파 정당의 전통적 정체성을 약화시켰다. 많은 유권자들이 좌파 정당이 더 이상 노동 계층의 이익을 분명하게 대변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서구 정치의 우경화를 가져온 이러한 요인들이 한국에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비교적 난민 문제의 정치적 부담이 없기는 하지만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한 경제적 불안, 미래의 불확실성과 세대 갈등으로 인한 문화적 불안, 그리고 정치적 정체성의 혼란은 정당의 변화를 압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보수가 쇠락하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스스로 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과 달리 한국에서는 오히려 보수 정당이 쇠퇴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선거전략의 실패라기보다 한국의 양당 정치 구조와 보수 정치의 성격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다.
따라서 한국의 보수 정치권이 앓고 있는 정치적 만성병을 치유하려면 먼저 스스로 변하지 못한 이유를 간파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보수를 지지하였고 또 지지하는가.
보수를 지지하는 첫 번째 이유는 보수주의로 대변되는 이념과 가치 때문이다. 좌파가 비교적 자유보다 평등을 우선시하고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면, 우파는 대체로 평등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중심에 놓는 ‘자유민주주의’를 대변한다. 이에 따라 진정한 보수주의는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민주적 절차, 헌정 질서 및 법치를 중시한다.
그런데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이러한 가치 보수주의마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살던 대통령이 스스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것만큼 가치 보수주의를 희화화하는 것도 없다.
보수주의자에게 법치, 시장경제, 제도적 안정, 그리고 시민의 자유는 훼손될 수 없는 핵심 가치이고 원칙이다. 서구의 보수 정당들은 이러한 정치적 원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반면 한국 보수 정당의 역사적 과정은 상당히 다르다. 한국 보수정치의 뿌리는 정치철학적 보수주의라기보다 냉전 체제 및 권위주의 국가 형성 과정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한국 보수 정당은 전통적으로 반공주의, 안보 정치, 국가 중심 경제성장과 같은 정치적 의제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이러한 정치적 정당성은 점점 약화되었다. 그 결과 한국 보수 정당은 새로운 이념적 정체성을 충분히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보수적 가치가 없는 보수 정당은 어쩔 수 없이 극우로 귀결된다.
한국에서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상대 당이 싫어서다. 서구 유럽과 달리 오랜 기간 양당 중심 정치가 공고해진 한국의 정치 구조에서 상대 당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하는가에 따라 지지율이 변화한다. 경쟁적 양당 정치가 적대적인 진영 정치로 변질될수록 모든 정당은 상대 당에 의존하게 되고, 스스로 변하기 어려워진다.
행정력과 정치력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상대 당이 가장 싫어한다는 이유로 검찰총장 출신을 대통령으로 내세운 순간, 국민의힘은 이미 정치적 자생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어떻게 싸워야 할지조차 모를 정도로 상황 파악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30%대 지지율 갇힌 ‘그들만의 리그’
■취임 1년 국민의힘 장동혁체제 진단
“24시간 필리버스터, 쌍특검 촉구 단식, 올림픽공원 집회까지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나.”(국민의힘 최고위원) vs “그렇다면 왜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도 당 지지율은 오르지 않는 ‘커플링’ 상태인가.”(국민의힘 영남 중진)
8월26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향한 당내 평가는 이처럼 극과 극으로 갈린다. ‘절윤(絶尹)’ 논란과 12·3 비상계엄 사과, 한동훈 전 대표 제명, 6·3 지방선거 등 숱한 위기와 사퇴론에도 체제를 지켜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강성 지지층에 기대면서 당 밖으로 외연을 넓히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장동혁 체제가 출범한 2025년 8월 당시 23%였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조금 올라 30% 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박스권에 머물러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 지난 1년 장동혁 체제를 지탱한 당내 권력구조와 한계를 지도부와 당내 중진 의원, 초·재선 의원들의 목소리를 통해 분석해봤다.
판사 출신 장 대표는 2022년 보궐선거(충남 보령-서천)로 국회에 입성해 2024년 재선한 1.5선이다. 8월19일 펜앤마이크 유튜브에 출연해서 스스로 “1.5선 당 대표로서 정치 경험이 부족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치 경력이 짧은 만큼 당내에 구축한 자기 세력이나 중진 네트워크가 약하다. 그걸 당원과 강성 보수층 동원으로 상쇄하고 있다.
실제로 2025년 8월26일 전당대회 결선투표에서 장 대표가 김문수 후보를 50.27%대 49.73%, 불과 0.54%포인트 차로 꺾고 당선된 데에는 당원 투표가 결정적이었다. 국민여론조사에서는 39.82%에 그쳐 김 후보(60.18%)에게 20%포인트 이상 뒤졌지만, 80%가 반영되는 당원 투표에서는 52.88%를 얻어 김 후보(47.12%)를 앞섰다.

■장동혁, 윤석열 지지층 기대며 합리적 보수 멀어져
장동혁 대표가 8월26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당원주권 2.0 시대”를 공언한 것도 이런 권력 기반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 측은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이 외연 확장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강성 당권파이자 장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정치는 부피가 아니라 질량”이라며 “정당은 가치와 이념의 결사체인데 보수의 가치와 이념을 더 강하게 해 질량을 높임으로써 외연을 확장해야지, 좌클릭하는 것은 외연 확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 대표가 추진하는 당협위원장 당원 직선제 역시 자신을 지지하는 강성 당원들의 당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러환 장동혁 체제에 늘 따라붙는 게 있다. 강성 당원 중심의 당 운영으로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더욱 커졌다는 비판이다. 국민의힘 초·재선 모임인 ‘대안과 미래’ 간사 이성권 의원은 “그 지지층은 성향상 부정선거 음모론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며 “그런 강성 지지자와 강성 당원을 중심에 놓고 당을 운영하면서 합리적 보수와 개혁적 보수가 국민의힘에 등을 돌리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장동혁 체제의 또 다른 버팀목은 당의 의사결정 머신, 즉 최고위원회의에서 수적인 우세다. 현재 지도부는 장 대표와 정점식 원내대표, 임이자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신동욱 수석최고위원과 김민수·김재원·양향자·우재준·조광한 최고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비당권파로 분류되는 우 최고위원 정도가 장 대표와 뚜렷하게 각을 세우고 있다.
인적 구조 탓이 큰데, 정점식·임이자·김재원 등 3인을 빼곤 초선이거나 원외 인사이고 영남·강남 등 텃밭 출신들이다. 양향자·조광한 등 2인은 국민의힘 당적이 된 지 1~3년여 정도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민심이나 당의 전통보다, 공천 또는 당 장악에 직접적 이해가 걸렸다고 볼 수 있다. 지도부로서의 경륜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최고위 의결이 필요한 주요 사안에서 장 대표와 함께 행동하는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당 중앙윤리위가 동원되곤 한다. 비당권파 의원들에 대한 징계에 착수하고 최고위가 이를 추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징계 정치’ 논란이 불거진 게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장 대표는 친장동혁 색깔이 강한 인물을 윤리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장 대표의 다른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 6·3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원한 당내 의원들을 겨냥해 “이 당에서 문제가 돼 제명 처분된 사람의 선거를 돕겠다고 나섰으면 탈당하고 가서 하면 된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장 대표 개인적으론 까다로운 문제는 회피하는 방책을 쓰곤 한다. 6·3 지방선거 이후 책임론이 거세지고 6월17일 의원총회에서 의원들로부터 면전에서 사퇴 요구를 받자 이튿날 건강 악화를 이유로 입원했다. 당내 의원들이 당협위원장 직선제에 집단적으로 반발한 8월21일 의원총회에도 건강검진을 이유로 불참했다. 장 대표의 용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해온 우재준 최고위원은 “사실 지방선거가 끝났을 때 사퇴해야 했는데 그 시기를 놓친 게 제일 크다”며 “지금 당장 총선을 치러야 하는 것처럼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장 대표가)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당권파가 연이어 ‘실수’하면서 장 대표에게 반격 빌미를 주기도 했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 제명으로 구심점을 잃은 데다 ‘개혁’ 성향의 ‘대안과 미래’는 소속 권영진 의원이 정 원내대표의 멱살을 잡은 일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 한 초선 의원은 “‘대안과 미래’는 이미 이미지가 훼손돼 목소리에 힘이 없으니 판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가 ‘머신’을 장악한 건 맞으나, 당내 세력까지 확장했다고 보긴 어렵다. 원내 다수가 ‘한동훈 비토’ 심리로 장 대표 체제를 용인하거나 묵인하는 쪽이었는데 이것도 달라지고 있다. 8월24일 최고위에서 의결이 유보된 당협위원장 직선제 논의는 지도부 내부의 동역학을 그대로 드러냈다. 김민수·조광한·김재원 최고위원은 장 대표의 구상에 힘을 실었지만 정점식 원내대표와 우재준 최고위원은 반대했다. 신동욱 수석최고위원과 양향자 최고위원, 임이자 정책위의장은 신중론을 폈다.
친장동혁계 과반이라는 큰 틀은 유지되고 있지만 모든 사안에서 장 대표의 구상이 관철되는 구조는 아닌 셈이다. 친윤계 당권파로 분류되는 신동욱 최고위원은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 경제나 대미 외교 등 굉장히 위험한 시그널이 많다”며 “이런 시국에 언제까지 당내 문제를 가지고 갈 것이냐는 생각이 있다. 당 내부 문제보다는 국가적 어젠다와 민생 문제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주목받는 건 정점식 원내대표다. 영남권 주류의 대표격으로 장 대표에 종종 제동을 걸고 있다. 의원들과 모임을 이어가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불러내고 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의원연찬회 참석을 두곤 “보수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있겠지만 수도권 등에서는 퇴행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한 초선 의원)는 지적이 나온다.
관망하던 중진들의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8월26일 4선 이상 의원 19명 가운데 9명이 모여 장 대표와의 간담회를 요구하고 징계 문제 등에 우려를 나타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지낸 5선의 김기현 의원 등이 ‘미래와 혁신’ 포럼을 주도했다.
■“여당의 失政에도 반사이익 못얻고 끌려가”
그렇다면 장동혁 체제는 유지될까. 장 대표는 8월26일 당원권 강화를 통해 임기를 다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현재로선 그를 하차시킬 힘이 결집되지 않았다는 게 당내 분석이다. 그러나 그의 한계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장 대표는 당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에는 찬성했지만 이후 한동훈 의원과 결별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윤 전 대통령 탄핵 표결에는 불참했고 탄핵 반대층과 윤 전 대통령 지지층을 핵심 지지층으로 삼았다. 그런 만큼 민심과는 멀어졌다.
이성권 의원은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윤석열 계엄과 단절하기보다 그 책임을 민주당에 돌렸고, ‘윤 어게인’ 세력과의 절연을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를 오히려 분열 세력으로 낙인찍었다”며 “국민이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놓친 것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영남권 중진 의원도 “비상계엄에 대해 분명히 선을 긋고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야 했는데 과연 진지하게 반성했고 그 진정성을 국민에게 보여줬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며 “노선 변화가 필요한데 민주당의 실정(失政)과 폭정에도 불구하고 반사이익조차 얻지 못한 채 끌려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보수 정치세력에게 필요한 건 더 강한 극우가 아닌 더 성숙한 보수주의
역사적으로 보수는 욕망의 결과이고 진보는 생계의 추구이다. 보수의 가치는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머리를 두고 재화의 움켜쥠(shaping)에 몰두하며, 진보는 가진 무리의 것을 나눠먹기(sharing)에 몰두한다. 따라서 보수는 탐욕의 유혹을 견디기 어렵고, 진보는 약탈 경제에 집착한다. 이러한 갈등 구조에서 보수를 갉아먹는 것은, 가진 것을 움켜쥐려다 보니 인색해지고 그 과정에서 적을 만든다는 점이다.
정치는 가치의 적절한 분배인데(Hans Kelsen: 오스트리아의 법학자, 1881~1973) 보수는 관용이 없이, 불필요한 적대세력을 창출하여 끝내 복수주의(復讐主義·vengeocracy: 정치가 ‘복수’라는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나 사고방식)로 흐른다. 전통적인 이론에 따르면, 보수는 부패로 자멸하고 진보는 분열로 자멸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도식이 무너진지 이미 오래다. 한국의 보수정치는 복수심으로 무장된 계급의 반격으로 궤멸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보수정치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나. 적어도 한국의 보수정치는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다. 더 추락할 것이며, 다음의 선거에서도 득표에 이길지 몰라도 의석에서 질 것이다. 지금 한국 보수정치의 적(敵)은 바로 내부에 있다. 이기심, 공정을 포기한 분파주의, 질주하는 정적(政敵)을 막지 못하는 무책(無策), 그리고 무지이다. 비리에 얼룩진 무리를 청산하는 용기가 없으면 보수의 미래도 없다.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경쟁하면서도 균형을 이루는 정치체제다. 만약 한쪽 축이 약화되면 정치적 균형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권력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팽창하려는 성질이 있다. 영국 역사학자 존 액턴 경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말처럼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아무리 도덕적인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외부의 통제가 없는 절대적 권력 앞에서는 사적인 이익이나 판단 착오에 휘둘릴 수 있다. 따라서 견제와 균형은 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분산시켜 서로 감시하게 함으로써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독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이다.
이미 입법 권력을 장악한 정당이 사법부마저 위협할 정도로 비대해진다면 민주주의의 토대는 심각하게 훼손된다. 보수가 진보를 견제할 정도로 견고해지는 것이 합리적이고 좋기는 하지만, 단지 이러한 이유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야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도층마저 보수에 등을 돌리고 있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 보수가 살아나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많은 유권자가 보수를 지지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가 살아나려면 자유와 민주주의 제도를 지킬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12.3 계엄의 늪에서 벗어나 ‘윤어게인’의 극우 이미지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한, 국민의힘은 결코 진정한 보수의 힘이 되지 못할 것이다. 견제와 균형의 한 축을 담당할 보수를 재건하는 길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보수는 진보와 싸우는 대신 극우와 자신을 구분해야 한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극우가 아니라, 더 성숙한 보수주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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