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오 케" 오늘의 연재 (83) 밴쿠버 최대규모 멀티 컬추럴 페스티벌 주최

조영재 기자 / 기사승인 : 2025-05-27 15: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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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가는
문화 중개인이 되고 싶다

몇 가지 이벤트와 행사에 자신감을 얻은 나는 보다 본격적인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느 여름날, 초록의 싱그러움이 시내를가득 메우고 있던 그날, 나에게 어떤 영감 같은 것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것은 갑자기 내 가슴속을 뜨겁게 만들었다. 에드먼턴에서 보았던 콜론다익 데이와 헤리티지 페스티벌이 그것이었다.
내가 에드먼턴의 앨버타대학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이들 축제를 직접 보았다. 8월 연휴를 맞아 열리는 축제는 겨울이 무섭도록 길고 추운 이 도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잔치였다. 친구들과 축제의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 나라의 태권도와 남미의 춤, 그리고 여러 나라의 음식들이었다.


거의 10년이 지난 후, 그때의 흥분이 다시 전해져 왔다. 이제 사무실은 내가 직접 뛰지않아도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행사들을 열어 주고 싶었다.
나는 친구 게리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캐나다 사복 경찰관이었다. 홈스테이 관계로 알게 된 이후 우리는 허물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게리,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맞혀 볼래요?”
“글쎄, 뭘까요? 이번 가을쯤에는 함께 한국에 나가자는 것 아닐까요?”
게리에게 나는 기회가 되는 대로 한국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미안하군요. 그것은 아니고 멀티 컬추럴 페스티벌이에요.”
“.......”
나는 밴쿠버에서 다국적 문화 행사를 열어 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내 설명을 듣던 게리는 다소 들뜬 소리로 반응을 보였다.
“그것 좋군요. 기발한 아이디어에요..아직 그런 큰 행사가 없었는데 ...... 잘 됐군요. 아주 잘된 일이야.”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사는 밴쿠버이지만 그들 각자의 문화를 한곳에 모아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없었다. 여름에일본인들의 행사가 조그맣게 있고, 캐루비언과 스칸디나비아 5개국이 모여서 하는 행사가 있었지만 수십 개국이 넘는 민족이 한자리에모이는 일은 아직 없었다. 그것은 너무 많은 소수 민족들이 살다 보니 나서서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민 온 사람들이 이곳에 적응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문화 쪽에 관심을 둘 정신적 여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민자 대다수가 그들의 본국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었지만 언어적 장벽과 먹고 사는 문제, 그리고 아이들 교육 문제등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일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 이민 사회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게리,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할 수 있지. 킴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엉뚱하다고 비웃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일단 게리의 반응이 좋아 용기를 얻었다.
퇴근 후 짐에게도 내 구상을 말했다. 짐 역시 격려해 주었다.
“당신은 할 수 있어.”
그 길로 에드먼턴에 있는 짐의 친구 제이스에게 전화를 했다.그녀는 마침 뉴펀랜드로 모레 이사를 간다면서 마지막 짐을 싸는 중이라고 했다.
“제이스, 나 부탁이 있는데 그곳에서 곧 페스티벌이 있죠? 거기에 관련된 정보와 팸플릿을 나에게 보내 줘요.”


나는 제이스에게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설명하고서도움을 청했다. 자기가 에드먼턴을 떠나기 전에 모든 것을 알아서보내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화끈한 성격대로 다양한 자료들을 나에게 모두 보내 주었다. 나는 제이스가 보내 준 자료들을 펼쳐 보았다. 나는 거기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일단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가장 먼저 장소를 물색하고나서 공문을 만들어 정부 기관과 언론 기관에 보냈다. 그리고 밴쿠버에 있는 각 나라 사회 단체와 대사관에 같은 공문들을 보냈다. 이행사를 위해 개인 사무실도 따로 냈다.
나는 날마다 그곳에서 이메일과 팩스, 전화로 행사를 사방에 알렸다. 게리는 쉬는 날이면 내 사무실에 와서 성의껏 도왔다. 그러나짐도 게리도 자기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의 도움만으로는 그 큰 행사를 감당할 수 없겠다고 판단되자 나는 앞이 암담했다. 포기할까도생각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나는 내가 얼마나 무모한 짓거리를하고 있는지에 대해 짐에게 푸념을 하곤 했다.아침이 밝아 오면 아이 얼굴을 한 번만 쳐다보고 집을 나섰다. 아이를 향한 사랑은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었건만 그것을 표현할 시간적 여유가 내겐 없었다.
신선한 아침이었다. 그날도 혼자 사무실에 앉아 행사를 위한 일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또 암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던 일을멈추고 깍지를 낀 채 두 손을 이마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뾰족한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한참을 창가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교회에서 만난 친구바바라가 떠올랐다.
당장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바바라는 2주 후에 나와 합세했다.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 주는 사람이 있으니 일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각 단체에서 연락이 오고맥도날드에서는 음료수와 자원봉사자들을 보내 주었고 대형 매장인세이브 온 푸드에서는 관객들에게 줄 상품을, 그랜드토이에서는 어린이용 장난감을, 대형 가구점인 아이키아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게임기를 보내 주었다. 올드스파게티팩토리 등 많은 업체들이 행사를위한 기부금을 전달해 왔다. 자원 봉사자들에게 줄 생수와 음식도관련 업체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한 그룹의 일본인들이 자원 봉사를 자청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인, 유럽인, 그리고 아프리카 사람까지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나타나서 우리 일을 도왔다. 바바라의 친구이자 내 친구가 된 가브리엘은 자원 봉사자들을 맡아서 책임을 지고 관리를 해 주었다.
자기 일로 바쁘던 게리도 다시 합류했다. 활기찬 그의 모습을 보니힘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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