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아 준 사람들
임신 8개월이 되었다. 작은 키에 자꾸만 커져 가는 배 때문에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차를 집에 두고 스카이트레인을 타고출퇴근했다. 모두들 억척스럽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집에서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시내에 있는 영어 학교 관계자를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이때 내가 가장하고 싶은 것은 마음 놓고 영어 공부에 다시 전념해보는 것이라고 하니까 그는 스칼라쉽을 줄 테니 자기 학교에 와서공부하라고 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영어 공부를 다시 하게 되다니 너무 기뻤다.
집에 돌아온 나는 짐에게 영어 공부를 위해서 이제는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야 된다고 했다. 짐은 이러다 내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걱정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마. 하다가 너무 힘들면 중단할 거니까.”짐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면서 대답했다.
“그럼 그렇게 해.”
더운 여름이지만 늘 아침은 상쾌했다. 월요일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싸서 들고 나섰다.
써리에서 밴쿠버까지는 스카이트레인으로 약 1시간이 걸렸다. 동쪽 종착역에서 타고 서쪽 종착역 두 정거장 전에 내려야 했다. 수업시작 전까지 학교에 도착하려면 최소한 집에서 2시간 전에는 나서야 했다. 다운타운까지 나오는 스카이트레인을 타기 위해서는 버스를 집 앞에서 한 번 더 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너무 행복했다. 한 손에는 빵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영어 단어장을 들고 바쁘게 뛰었다. 스카이트레인에서 내려 헉헉거리며 계단을 올라 영어 학교로 들어갔다.
그날 나는 배치 고사를 본 뒤 최상급반인 캐네디언 문화를 배우는 반으로 들어갔다. 6명의 수강생은 모두 유럽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수업은 흥미진진했다.
에드먼턴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학생들은 계속해서 조잘거리고묻고 따지고 발표를 하고... 아주 적극적인 자세였다. 그들은 수업시간에 놀고 있는 듯 보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들을 모두 해내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쉽게 친해졌다.
‘김옥란’이 어느 영어 학교에 다닌다‘는 소문이 주변에 퍼지자 많은영어 학교에서 날 찾아와 평생 스칼라쉽을 주겠으니 자기 학교로 와달라고 사정을 했다. 나 혼자만을 위한 영어 프로그램을 자기가 직접디자인해서 가르쳐 주겠다는 학교도 있었다. 적잖은 학생들이 내가다니던 학교로 옮기는 일이 벌어지는것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짧은 학창 시절은 산달이 다가오면서 일단 멈춰져야 했다. 짐과 함께주말에는 출산용품들을 사러 다녔다.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에 앞서 나는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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