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아 준 사람들
“Kim, You did it.”짐이 떠난 후 나는 혼자서 카펫 바닥에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영주권 한 장을 가지려고 그렇게 모진 인고의 세월을 보냈구나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아파트.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지만 나 혼자서 무엇이든채울 수 있는 자유는 있었다. 처음으로 맛보는 해방감이었다. 발코니로 이어지는 유리문을 통해 들어오는 불빛을 오랜동안 망연히 바라보았다.
어느새 새벽 2시가 되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미리 전화기를 설치해 두어 한국에 전화를 할 수가 있었다. 한국은 토요일 오후라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조카인 민숙이 전화를 받았다. 민숙은 물리 치료사로서 지체 부자유자들을 위한 특수 학교의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박사 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민숙아, 나야.”
“막내 이모?”
“민숙아, 나 이사했어. 아파트야. 이제는 언제든지 전화해도 내가직접 받을 수 있으니 걱정 말고 전화해.”
우리는 오랫동안 집안 얘기, 학교 얘기 등을 나누었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아침이 되었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는 눈처럼 갈바닥에 떨어져 있는 벚꽃을 밟으며 거리로 나섰다. 한 블럭 거리에 있는 가게로 들어가 빵과 잼을 샀다. 아파트로 걸어 들어오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뭔가 불안했다. 누군가가 곁에서 왜 일하지 않고 그렇게 있느냐고 소리를 지르며 성을 낼 것만 같아서 자꾸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다. 마치 내 몸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하고, 어색하게 끼워 맞춘 액세서리를 달고 있는 듯한 느
낌이 들었다. 이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지만 왠지 모를불안한 마음이 여러 날 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것은 즐거운괴로움이었다.
내가 아파트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짐이었다. 그는 늘 그랬던 것처럼 촉촉하게 젖은 파란 눈을 하고 거인처럼 서 있었다. 그는 나무로 된 식탁과 작은 책상, 그리고 의자를 가져왔다. 그것들은 할머니네 집에서 쓰던 것들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4명의 자식들은 그 집을 처분하여 똑같이 나누어 가졌다. 짐은 내 몫으로 그 가구들을 챙겨 창고에 넣어 두었다가 이사에맞춰 가져온 것이었다. 함께 들고 들어온 작은 바구니 안에는 그릇도 몇 개 있었다. 짐이 자리를 잡아 준 책상 위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컴퓨터를 올려놓았다.
나는 짐과 함께 가구점에 가서 침대와 소파를 주문했다. 그냥 카펫 바닥에서 잘 생각이었지만 짐의 강권에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한국 식당에 들러 짐은 불고기를, 나는김치찌개를 먹었다. 짐이 내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누나샤론을 만나러 간 사이에 나는 나의 분신인 3단짜리 이민 가방 2개를 풀었다. 그동안 틈틈이 모아 놓은 학교에 대한 자료들이 쏟아져나왔다. 종이 한 장도 내겐 소중한 자료였으므로 그 어느것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상자에서 꺼낸 정보와 서류들도 레이블을 붙여바로바로 필요할 때마다 찾아볼 수 있도록 한쪽 벽에 자리를 잡아두었다. 그 자료들을 보자 내 마음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그래, 남의 집에 살면서 마음대로 만나지도 못한 학생들을 부르자.’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학생들이 하나 둘씩 아파트로 모이기시작했고, 주문한 가구가 들어오기까지 1주일 동안 제법 많은 학생들이 오갔다. 거처를 옮기는 과정에서 하루 이틀 날짜가 맞지 않아잘 곳이 없는 학생들이 내 아파트로 왔다. 어떤 날은 이불 하나로 6명이 함께 잠을 잔 뒤 새벽에 일어나 영어 단어를 외우기도 했다.
그래도 그곳은 우리의 아지트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달콤했다.나는 아파트에 쌀밥과 김치, 그리고 라면을 항상 떨어지지 않게비치해 두어 출출한 학생들이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했다. 얼마 전까지도 헐벗고 굶주렸던 내 처지를 생각하면서, 나와 같은 불쌍한유학생이 내 주변에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리치먼드에서 밴쿠버 시내의 내 아파트로 이사 온지 3개월이 될즈음이었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한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내가 에드먼턴에서 밴쿠버로 왔을 때 한인회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매달려 워킹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지만, 가끔씩 걱정스럽게 나의 안부를 묻곤 했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물었다.
“야, 너 임신했니?”
“뭐, 임신? 뭐라고요?” “그런데 말이야, 오늘 차 몰고 가다가 네가 걸어가는 걸 봤거든. 그런데 너 배가 많이 나왔더라. 그래서난.....”나는 전화기를 놓칠 정도로 깔깔대고 웃었다. 그는 내 웃음소리에 조금은 머쓱해진 것 같았다. 사실 내 몸은 리치먼드 그 집에서나온 지 불과 3개월 만에 20킬로그램이나 늘어나 있었다. 임신이아니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불어 나는 내몸무게를 보면서 나는 내가 감당했던 중노동이 얼마나 가혹했던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내 육신과 영혼은 그렇게 심한 학대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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